30대, 편의점에서 마주한 작은 세계
사람들의 사소한 마음과 습관이 드러나는 3분 동안의 작은 세계,
그 건너편에 내가 서 있다.
졸업 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근 2년 동안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30대가 되니 이젠 사람들에게 시달리기도 싫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지쳤다. 그래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하며 지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도,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안에만 있으니 답답했다. 살만 찌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마침 재택근무는 시간이 유동적이라 투잡이 가능했다.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편의점 알바가 눈에 띄었다.
걸으면 40분, 차로 가면 5분 거리에 있는 조그만 편의점이.
그래, 편의점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다지 감정 소모가 크지 않은, 육체적 노동이 딱히 없으니 체력 소모도 크지 않을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 지원했다. ‘미혼/비혼 주의자, 깔끔한 성격’ 2가지 메시지가 다였다.
이튿날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그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였다. 조그마한 골목에 빌라들이 붙어있는 조용한 주거지였다.
편의점 가는 길목에 있는 떡 방앗간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동네를 정겹게 만들었다.
사장은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건네고는 이 가게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고, 청소나 물건 정리, 담배 시재확인, 현금 시재확인을 안 해도 된다며 아주 편안한 분위기임을 강조했다.
바깥 파라솔에서 진행한 면접 말미에 나는 제가 결격사유가 있을까요? 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사장은 살짝 주저하더니 웃으며 채용을 확정했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시작은 토요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7시간씩 이틀.
아무리 장사가 안되는 편의점이라고 해도 첫날은 정신이 없었다.
담배 종류가 너무 많았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손님에게 담배를 재차 묻기도 했다.
손님이 ‘에쎄 수 0.5미리요’라고 했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 허공에 키보드를 두드리듯이 손을 움직거렸다.
손님이 웃으며 거기 오른쪽이요라고 알려줬다.
에쎄만 해도 종류 너무나 많다. 뭔 놈의 담배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 건지.
에쎄 클래식, 프라임, 원, 에쎄 수 0.1, 수 0.5, 에쎄 체인지 빙, 히말라야, 느와르 등등 생각나는 것만 해도 10가지 정도다. 게다가 ‘에쎄 히말라야’라고 하지 않고, ‘히말라야 주세요’라고만 하면 순간 답이 없어진다. 약 삼초 정도의 텀이 생긴다.
손님 들어오는 걸 보며 긴장만 하다가 결국 실수를 저질렀다.
여기다 주차하면 안 된다는 전화가 왔던 것이다. 낯선 동네인 탓이다.
편의점 문을 열어둔 채 후진으로 차를 옮겼다. 후다닥 뛰어왔더니 이미 가게에 손님이 들어갔다.
얼음컵 4개와 음료를 골라왔는데, 급한 마음에 그만 얼음컵 계산을 빠트린 것이다.
커피 머신 커피는 바코드만 찍으면 되지만, 얼음컵 음료는 각각 찍어야 하는 걸 헷갈려 버렸다.
사장이 교대하러 왔을 때, 당당하게 이실직고를 했다. 사장이 어쩔 수 없죠. 하고 넘어가 주어서 아주 뻔뻔하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삑-. 4,500원입니다.
삑-. 18,200원 입니다.
인내심 있는 동네 주민들과 나의 능글맞음이 융화되어서 그래도 금방 적응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었고, 책도 읽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5살 꼬맹이부터 80대 할머니, 택배기사님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지겨울 틈이 없었다.
한 달쯤 됐을 때 사장이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쵸쵸는 어떻게 했길래, 손님들이 친절하고 성격 완전 좋다고 칭찬을 해?
나는 동네 주민분들이 다 좋으시던데요? ㅎㅎ 감사합니다. 하고 말았다.
사실이었다.
어서 오세요부터 안녕히 가세요까지의 시간은 평균 3분 내외다.
그 짧은 만남의 순환 속에서
나는 이 조그만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그저 상품이 오가고 돈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하루가 잠깐 머물렀다 가는 곳, 작은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 역시 이곳에 하루하루 작은 바코드를 찍으며, 내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담배 한 갑으로,
누군가는 커피 캔 하나로
오늘 하루를 버틴다.
모든 물건이 바코드와 유통기한이라는 숫자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나는 그저 그들이 사 가는 물건으로 그들의 하루를 조심스레 추론해 볼 뿐이다.
그리고 문득,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바코드와 숫자로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너무 낭만이 없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