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월, 우리 학교의 여름 체육대회가 열린다. 이 체육대회는 단순한 운동회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하는 대규모 행사로, 학교가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차는 특별한 날이다.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바로 Marching이었다.
출처 : Stanes school facebook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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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는 총 4개의 팀이 있었다. 초록색 옷은 Groves House, 빨간색 옷은 Fritchley house, 파란색 옷은 Stanes house, 그리고 노란색 옷은 David House.
당시 나는 빨간색 옷인 Fritchley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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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의 학생들은 각자의 팀 색깔에 맞는 체육복을 입고 일렬로 행진하며 운동장에 들어섰다. 그 행렬은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각 팀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듯했다.
행진이 끝난 후, 체육대회의 백미인 봉화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각 팀의 대표인 캡틴들이 봉화를 들고 빠르게 릴레이를 이어갔다. 이 봉화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었다.
올림픽에서 하는 개막식처럼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출처 : Stanes school facebook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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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Fritchley 팀을 대표해서 봉화 릴레이에 나선 휘진 오빠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체육 대회가 끝난 후 당시 휘진 오빠는 봉화 릴레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부끄럽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얘기를 다시 꺼내보니 그는 전혀 기억을 못 한다며 "내가 그랬다고?!"라는 반응을 보이며 신기해했다
봉화 릴레이가 끝나고, 체육대회의 오프닝 무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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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인도 학교의 체육대회는 한국 학교의 익숙한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특히 한국의 체육대회는 반 티라는 것이 있고 경기 종목 참여에 더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여기는 학교 규칙이 엄격하다 보니 정해진 체육복을 입어야 하며 모두가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출처 : Stanes school facebook 공식
강제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열정적이고, 불만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열기에 휩싸여 열심히 응원하고 있지만, 나는 그저 그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체육대회가 단순히 경기를 넘어서, 학교 문화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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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진행되었고, Canteen은 그날의 또 다른 즐거운 부분이었다. Canteen은 학교 내 작은 매점처럼, 학생들이 길거리 간식 같은 음식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 아침 사감 선생님은 포켓 머니라고 불리는 20루피 정도의 소정의 용돈을 나눠주셨다.
그 돈으로 학생들은 인도 특유의 간식들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간식으로는 사모사, 파코라 그리고 음료가 있었다.
사모사는 바삭하고 고소한 반죽 안에 향긋한 채소나 고기 속이 들어간 인도의 대표 간식이고,
파코라는 채소나 고기를 병아리콩가루 반죽에 묻혀 튀긴 인도식 튀김 간식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이곳은 한국과는 다르게 간식이 참 기름지다.
그날, Sangyal이라는 다른 티베트 친구가 수지를 데리고 여러 곳을 구경시켜 줬다. 나는 그때 Lhadon과 함께 있었고, Lhadon은 나를 챙겨주며 나도 편안히 체육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런데 갑자기 Lhadon이 "너도 수지처럼 예쁘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영어를 잘 못 했던 상황이라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 나는 수지와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그녀를 계속 찾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Lhadon에게는 내가 수지를 질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나, 수지가 오고 나서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수지를 질투하냐고 묻기 시작했다.
'갑자기? 질투해야 하는 포인트가 있었나? 내가 질투하는 것처럼 사람들 눈에 비치나?'
그때부터 점차 수지와 나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그들의 질문이 우리 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