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말이야, 너희들 나이였을 때 인도에서 살았어
새로운 한국 소녀가 전학 오자 학교는 금세 떠들썩해졌다.
같은 나라에서 온, 같은 성별의 친구가 생겼다니, 마치 내 편을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든든해지고, 세상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기숙사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수지와 함께 반에 들어섰다.
그녀를 보기 위해 다른 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불과 한 달 전,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 애에게 쏠리는 관심 속에서 나도 덩달아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아이들이 나보다 하얀 수지의 얼굴을 자꾸 만지기 시작했다.
허락 없이 남의 얼굴을 만지다니, 초면에 그래도 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수지는 불쾌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처음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지, 억지로라도 표정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나처럼, 그녀도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조심스러웠을지 모른다.
후에 수지가 이곳에 완전히 적응했을 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물건이나 얼굴을 만지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마치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의 것, 아니, 자신의 공간을 지켜내려는 단호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내심 부러웠다. 그때 당시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어서 싫은 소리를 크게 하지 못하던 소녀였기 때문이다.
다시, 수지가 처음 학교에 온 시점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그런 그녀를 둘러싸고 재잘거리는 친구들을 보니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그들과 웃으며 어울리는 모습이 어딘가 불편했다.
‘얘네들한테 수지를 뺏기면 어떡하지? 이제야 내 편이 생겼는데.’
그 감정을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몰랐다. 질투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정 같았고, 그렇다고 단순히 불편하다고 하기엔 마음 한구석이 계속 어수선했다. 타국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그녀는 내가 만난 유일한 한국인이자, 나와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였다. 아마도 그래서 더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다른 친구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녀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말을 걸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 느꼈던 그 특별한 연결이 다시 단단해질 것만 같아서.
한편으론 나 자신이 굉장히 우습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애를 쓰는 걸까? 친구를 사귀는 일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배웠는데, 왜 그녀가 나 아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이렇게 신경 쓰일까?
어른이 되고 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가 되어보니, 그때의 혼란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들이 무엇이었고, 왜 그렇게 얽히고 꼬였는지
내가 그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가슴속에서 조용히 뒤섞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