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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Apr 06. 2018

. (점)

내가 누구인가, 그런 정체성이란 세상이란 거울에 일관성 있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성찰 속에서 싹튼다. 매번 다른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느라, 매번 바뀌느라 정착하지 못한 나의 모습은 꼭 크기도 모양도 없는 점 같았다. 넓고도 넓은 이 세상, 5대양 6대륙이라는 무대 속에 존재했지만 매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왜곡을 통해 비춰진 내 정체성은, 위치는 있지만 차지하는 공간은 없는 점처럼, 존재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늘 검은 정장과 검은 모자를 쓴다. 머리는 꼬불꼬불하게 길게 늘어뜨린다. 매일매일, 아무리 날씨가 무더워도 예외일 순 없다. 누구나 입는 것이 옷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율법의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획일적인 율법 속에서,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한 풍경 속에서 나는 '이교도'였다.


미국에서 살던 곳은 학군이 좋은 탓에 매년 더 많은 한인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다수가 된 집단은 이미지와 선입견 생기기 마련, 그곳에서 나는 다수에 편입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예컨대 실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학 영재' 같은 것이었다.

 

외국인 여자로서 파키스탄의 거리를 걷는 경험은 정말로 묘하다. 온 동네가 일시 정지한 채 나만을 쳐다본다. 저 멀리에서도 미어캣마냥 시선을 준다. 내 존재가 매 순간 그토록 의식된다는 것은 기가막히게 어색하며, 아무리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는 눈빛에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단언컨대 웬만한 연예인도 해보지 못했을 경험일 테다. 그곳에서 나는, 보태어 말하자면, '톱스타'였다.

 

언젠간 친구네 집에 다 같이 놀러 가려고 했는데, 나를 초대하기 망설여했다. 어린 동생이 한 번도 다른 인종을 본적도, 생김새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난 모습만으로도 '동심 파괴자'였다.

 

라마단 금식기간이면 텅 비는 급식실에서 독일인 한 명 그리고 헝가리인 한 명과 점심을 먹었다. 그때는 백인들과 묶여 '소수'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내가 나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의 시선들 속에서 각각 찍힌 점들은 시간이 지나 선이 되고 면이 되고 공간이 되어 차원을 이뤄갔다. 점은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모든 차원에 속하며, 모든 공간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게 작은 점들로 매워가는 나의 모습은 결국 점묘법 마냥 점이 많아질수록 다채로워지며 선명해졌다.


무슨 그림이든 붓 터치 한 번으로 대작을 그릴 순 없는 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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