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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Dec 25. 2018

파키스탄 선생님, 미즈 멀자(下)

        머릿속 뉴런들이 파업이라도 해버린 건지, 생각이란 게 하나의 연결고리를 이루지 못하고 모조리 소멸해버리는 그런 날들이 있다. 어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듯 창작의 진로에 예상치도 못한 정지가 찾아온다. 영미권에서는 이런 증상을 '작가의 벽 (writer’s block)’이라고 부른다. 다만 나는 글을 쓸 때보다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창작 둔화에 시달렸다. 화실에 앉아서 고작 밑그림인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해 놓은 작품을 앞에 두고도 어떻게 이어나가고 싶은지를 모르겠는, 작가로서 내려야 할 결정들이 버거운 날들이다.

 

        머릿속으로는 여러 번 완성작을 그렸던 작업이다. 그게 문제였다. 그 상상작(想像作)의 찬란함이 붓을 들게 했고 붓을 든 나의 ‘똥 손’을 간과하게 했다. 하여 구현보다 더 수월한 쪽은 늘 공상이었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을 실제로 표현하는 일은 바라던 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그림이 어떤 모양새를 갖춰갈수록 이상과 멀어졌다. 해왔던 대로 서너 걸음 뒤에서 빤히 바라보았지만, 길잡이가 될만한 생각은 떠오르질 않았다. 답답하고 막막한 시간이었다.

        

        그런 날에도 미즈 멀자는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왔다. 그녀는 종종 텔레파시로 말을 걸었는데, ‘어때?’라고 묻는 것 같았고, 나는 더는 손대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누리는 창작의 자유와 어긋나는 무기력함인 것 같아서 입을 떼지 못하고 먼산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는 나무가 있었고, 그 뒤로 희끗희끗 보이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이 시간만 되면 유치원생들이 나와서 뛰놀았다. 떠들썩한 소리로 입장해서 적막을 남기고 들어가는 요란한 무리였다. 걔들은 늘 아주 거침이 없었다. 돌진하듯 뛰고 바람을 가르며 미끄럼틀도 쌩쌩 탔다.


        집중력을 잃을 때 쓸데없는 생각들이 찾아온다. 하루는 갑자기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가 생각난 것이다. 침대 밑에 살던 몬스터에 관한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귀여운 털북숭이 인형이 밤만 되면 으스스해졌던 기억, 근데 그 인형이 그립다는 생각이 스쳤다. 뜬금이 없다. 그렇게 순간을 날아다니는 생각들의 방해를 받는 동안 미즈 멀자는 가만히 기다려 주셨다.


        결국 이런 요령부득한 말을 늘어놓으며 ‘모르겠다’는 말을 대신한다. “이 그림에는 동심을 더 담았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순수하게 귀신을 무서워하잖아요, 그런 확실하게 무섭지만 진짜 무서운 실체는 아닌 귀여운 유령스러운 느낌으로요.” 그런데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에도 진지한 분이 미즈 멀자이신 거다. “유령스러운 느낌이라, 차콜을 써볼래? 차콜로 옅은 바탕 스케치를 그렸을 때 인물 뒤로 남는 여러 선의 흔적을 미술에선 ‘유령’이라고 부르거든.”


        나는 반신반의한 기분이었지만 방향이 없을 땐 어느 길이든 상관이 없다. 설계대로 이루어지는 그림이 아닌, 서서한 순간에  드러나는 그림을 그렸다. 완성작은 정말 멋졌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고, 한 획이 더해질 때마다 처음 만나는 얼굴이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오, 정말 목탄이었다.


        사실 나는 미즈 멀자에게 헛소리 같은 걸 자주했다. 자주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또는 완전히 독창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불모의 날이었다. 몇 분간 멍을 때리다가 오래 전 만들었던 콜라주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올랐다. 어릴적, 딱풀과 가위 그리고 잡지책이면 혼자서도 오리고 붙이는 시간을 곧잘 보냈다. 발신인의 정체를 숨긴 비밀 서신을 만들겠다고 신문 글자를 샅샅이 뒤졌다. 그게 참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콜라주는 너무 시시하다는 기분이 금세 들었다.


        며칠 후에 미즈 멀자가 찾아왔다. “소현아! 이것 봐, 재밌는 이미지 트랜스퍼 기법을 찾았어.” 잡지에서 뜯어낸 종이를 머리 위에서 펄럭이셨다. “네가 콜라주 같은 걸 하고 싶은데, 오려서 붙이기는 싫다고 했잖아. 이걸 한번 해볼래? 프린팅된 이미지를 윈터그린 오일로 녹이면 도장처럼 찍을 수 있대. 내가 이미 필요한 재료를 다 사 왔어, 여기.” 선생님의 손엔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스스로의 한계에 가로막혀 내뱉어본 말일뿐이었다. 그러나 내 곁에는 ‘오려 붙이지 않는 콜라주’를 며칠 동안 고민하고 계셨던 분이 있었다. 목적했던 곳으로 가지 못했을 때, 어김없이 내 옆으로 찾아온 분은, 미즈 멀자였다. 쓸만한지 한번 실험해보라며 건네받은 것들은 나의 놀잇감이었다. 챠콜이라는, 윈터그린 오일이라는, 마스킹 테이프라는, 혹은 소금이라는 도움의 재료들은 나를 거침없게 만들었다. 새 물질을 기분 가는 대로 실험했다. 어떤 신비한 작품이 완성될지는 반응을 일으켜봐야 알 수 있으니까. 그럴 때면 비로소 오도 가도 못하고 앞뒤로 꽉 막힌 상황이 뚫렸다. 어린아이가 타는 미끄럼틀처럼, 막힘없는 고속도로처럼, 과정에서의 해방을 주었다.


        상상력, 이상형, 추진력, 실망, 체념. 영감이라고 오해하던 진부한 것들은 은산철벽 앞에서 돌파구가 되어준 일이 잘 없다. 은과 철처럼 견고해 보이는 어려움을 넘는 방법은 의외로 거창한 수행이나 방법론도 아니었다.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통과였다. 누군가의 도움. 작은 계기가 필요했다. 그 어느 폐쇄로도 진정 혼자 뚫은 적은 없었다. 사방으로 막힌 나의 세계 밖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한 사람, 미즈 멀자는 나의 영감을 완성시키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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