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풍덩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하는 도시가 있다? 오늘도 비제르트의 열기는 뜨겁다.
“비제르트, 어릴 때 자주 갔죠. 다리에서 뛰러”.
“다리에서 뛰어내렸다고요? 다리에서 이렇게 (손가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내렸다고요?”
그는 도개교를 말하고 있었다. 비제르트 운하에 놓인 랜드마크 철교다. 원래는 호수, 지금은 지중해와 이어진 만(灣)이 된 셈이다. 맞게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짓 몸짓을 동원하여 힘없는 추락을 표현하는 나를 힐끗 본 기사님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네네, 이따 보게 될 거예요”
수도 튀니스로부터 북쪽으로 70km에 놓인 항구도시 비제르트. 우리는 그곳에서 열리는 한 K-pop 경연대회의 초청을 받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계기였을 뿐, 이벤트 자체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잘해봐야 조금은 엉성할 테지.
그보다는 관광목적으로 나선 길이었다. 도시 안의 운하라니. 비제르트는 사진 상으로 얼핏 베니스 같은 느낌을 풍겼기 때문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니 나는 사뭇 진지했다.
“다치지 않았어요?”
“그냥 물인데요”
물에 떨어지는 건 큰일 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엔 동요가 없었다.
“왜 뛴 거예요?”
이런 나의 질문에 어떤 어릴 적 추억이 잠시 방문했는지, 기사님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그러더니 어깨를 살짝 들먹이며
“재밌어요 (It’s fun)”라고 짧게 대답했다.
일종의 놀이라는 것이었다. 기사님은 익스트림을 즐기는 사람이구나, 혼자 상상했다. 그에 비해 나는 머릿속에 뉴스 보도와 영화 장면들이 떠오르는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선, 자살할 때(엄지로 목을 그으며)
다리에서 뛰어요(검지로 다시 포물선)”
그랬더니 기사님이 곧장 귀엽다는 표정으로 이런 유머를.
“물에서 자살? 하하, 우린 테러리스트라서 그럴 필요 없어요.”
조금 후, 2차로로 쪼그라든 길이 교통 체증을 빚었다. 우린 도개교로 진입하고 있었다. 정말로 다리 바깥쪽 난간에 고작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아이들이 아기 원숭이들처럼 매달려 있었다. 웃통은 벗어던진 채였다. 마포대교 같은 높은 다리는 아니었지만 저 아래 물이 아득했기 때문에 광경은 아찔하기 충분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준비하던 한 소년이 힘차게 튀어 날았다. 아이가 물에 첨벙 빠지고 나는 물결을 계속 주시했지만 수면이 잠잠하여 아이가 사라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기사님이 물가의 큰 돌을 가리켰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널찍한 돌 위에 몇 명이 대자로 뻗어있었다. 매끈한 돌의 표면에 물기가 축축했고 광이 났다. 아까 뛰었던 그 아이도 근처에서 고개를 빼꼼 내보이곤 돌 위로 철퍼덕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름도 모를 소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매우 질서 정연한 투신 놀이군. 과연 어설프지 않군.
이 다리는 운하로 배가 지나다닐 수 있게 하루 세 번 들린다고 했다. 페니키아인들이 전초기지로 개척했을 약 3000년 전부터 비제르트는 지중해 지역의 가장 훌륭한 항구이자 해군의 요충지로 이름을 떨쳤다. 물자 이동에 용이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비제르트의 역사는 온통 ‘니꺼냐 내꺼냐’로 얼룩져있다. 그 침략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복잡다단하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 비잔티움 제국이 해군항으로 활용했다. 그 외 아랍 제국, 신성 로마 제국과 투르크 족도 한때 이곳을 지배했다. 그러니까 시대별로 힘쎈 놈들은 한번씩 다 탐했던 도시다.
프랑스 식민지 땐 프랑스의 해군기지가 되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롬멜 장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튀니지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1956년에도 비제르트만은 예외였다. 프랑스군은 비제르트를 내어주기 싫어서 이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매일 외선에 길을 내어주던 다리다.
역사에선 제국주의 세력의 중심지, 현재는 튀니지 최대 한류 동호회의 본거지다. 우리는 슬픈 전설의 다리를 거쳐 곧 한류팬들이 주최한 K-pop 대회장에 도착했다.
체육관 앞에 사람들이 마중 나와있었다. 우리에게 꽃 리스를 걸어주고 나무 막대기와 색종이로 만든 귀여운 부채를 쥐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너도나도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네 왔다. 내가 인사를 받아 주었을 때 그들은 감격을 받아 입을 틀어막고 발을 동동 굴렀기 때문에 조금 머쓱했다. 연예인 체험을 해보고 싶은신가. 비제르트로 오시라.
그런 환대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스라엘에 살 적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빠는 당시 문화 홍보 일을 하셨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 온 무용팀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버스킹 부채춤 공연을 했다. 반나절 간 이어진 공연엔 아무도 모여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길도 주지 않았다. 햇빛이 작열하는 거리에서 결국, 무용수 한 분은 더위에 탈진해버렸다. 그 아수라장이 떠올랐다. 축 쳐진 그 분을 아빠가 둘러업고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다. 그랬는데 내가 잠시 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한국의 위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강남 스타일'에... 방탄소년단에... 명실상부한 문화 수출국이 됐다. 무엇에 그렇게 끌리는지 오늘 같은 날은 의아할 정도로.
곧 객석이 어두워지더니 전면의 커튼에 영상이 투사됐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제주도 자연, 불국사, 한강, 동대문, 서울의 야경이 우아하게 펼쳐졌다. 사방에서 환호, 휘파람, 환호가 터져 나왔다. 튀니지를 담은 영상이 이어졌다. 객석은 나란히 소개된 두 나라의 만남을 환호하고 있었다.
동영상이 끝나고 커튼이 걷혔다. 한복을 꼭 차려입은 튀니지 소녀들이 무대로 나왔다. K-pop 대회라더니. 그들은 부채춤을 추었다. 그리고 나는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긴 장단에 맞춰 정지하는가 싶다가 다시 힘차게 뻗어내는 손짓을 보았다.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경쾌하게 움직이는 선을 보았다.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한국적인 그 무엇이 무대에 녹아 있었다.
이 부채춤은 자기들끼리 유튜브를 보고 연습한 거라고 했다. 한복과 부채는 모두 직접 손으로 제작한 거라고. 대단한 열정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저 한국적인 선을 알까. 한국무용을 배운 적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유전적으로 알 터도 없다. 저 정서를 알아차리고 표현하려면 저걸 아름답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전통 춤은 서사에 불과했다. 태권도 관장 없는 도시에서 태권도 시범을 봤다. 재구성된 아리랑의 연주도 들었다. 구슬픈 사랑의 발라드도 들었다. 이 세상에 이토록 매력적인 문화가 존재했나 싶었다. 점점 빠져들었다. 그런데 빠져들수록 그것은 나의 문화였다.
모든 것은 그저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일’이랬다. 한글, 연극, 무용, 무술, 노래와 댄스까지 ‘한국’이라는 컨셉 아래 총망라된 그들의 축제였다. 지중해의 작은 항구 도시에서 열린 축제. 한류 시대에 이 정도는 당연한 걸까. 한 나라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 사랑이 어떻게 당연할까.
더구나 이 도시는 침략의 아픔을 지닌 도시다. 무력으로 타국의 역사에 편입되어온 슬픔이 있는 도시다. 어쩌면 아픔만 주었던 타국의 문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밖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나는 결국 옆자리 소녀에게 물었다.
“K-pop을 왜 좋아해요?”
그녀는 행복해보였고,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재밌어요”.
도개교 위에서도 들었던 목소리였다. ‘재미’가 마음의 수로를 열어젖힌다. 그것은 아픔 위로 흐르고 과거라는 난관를 뛰어넘으며 비제르트와 먼 세계를 잇는다.
외세의 상징인 다리는 놀이터가 됐다. 삼삼오오 모여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평생 쓸 일 없을지도 모르는 한국어도 서로 가르쳐준다. 그런 개방적인 마음, 그런 적극적인 마음이 한껏 물결치는 비제르트 다리 위에 서면 보이는 것이 있다. 이곳은 침략의 도시도 케이팝의 도시도 아닌, 생기의 도시라는 것. 비제르트의 삶은 온통 다리 위에서 이뤄진다. 그 문은 내일을 향해 열린다.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