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혼돈을 겪어야 할까
알베르 카뮈가 좋아한 시디부사이드. 지금은 혼돈의 땅이 된 곳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고 2010년대의 중동을 새로 읽어본다. 민주주의란 어떤 값을 치뤄야 하는 걸까.
여름의 길목에 들어섰다. 태양이 작열하는 주말, 바로 지금이다. 뫼르소를 만나기 좋은 계절.
카뮈의 ‘이방인’을 집어 들었다. 현기증 나는 더위에 이성을 상실하고 그만 살인을 저지르는 이 청년의 이야기에 공감을 느꼈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아마 누구도 수직으로 내리쬐는 아프리카의 불볕 아래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뜨거움으로 불쾌를 재촉당하는 계절에 독서나 사색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시디 부 사이드의 돌바위에 걸터앉아 ‘이방인’을 읽어보는 일, 튀니지에 산다면 해 볼만한 짓이다.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가을 같은 건 없으니.
언덕 위에 앉아 지중해를 마주 보는 시디 부 사이드는 벽은 온통 하얗고, 대문과 창틀과 지붕은 파랗다. 산토리니 같다고들 하지만 산토리니보다 나은진 모르겠고 문화사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마을로 유명하다. 그중엔 알베르 카뮈도 있다. 햇살과 바다의 마을을 그는 자주 찾았다고 한다.
골목골목 사이로 흐르는 민트 차 내음을 맡으며,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온 뜨거운 열기를 몸통으로 흡수하며 ‘이방인’을 써 내려갔을 그를 상상해보지만 채 몇 분을 못 간다. 앉은자리가 금세 뜨겁다. 숨이 턱턱 막힌다. 피부가 속수무책으로 달아오른다. 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고 그 다음엔 엉덩이골을 타고 흐르고 두통이 찾아오고 눈을 찔러대는 자외선의 끝없는 공작에 와락 짜증이 솟구친다.
여름은 참아내기가 힘들다. 이렇게 맨몸으로 만난 태양은 더더욱.
카뮈는 살인사건에 대해 이렇게 쓴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북아프리카 출신이었으니 여름과 잘 아는 사이였다. 즉, 무자비한 강렬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덧없는 몸부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미 손에 쥐어져 있는 권총을, 검지 끝에 차갑게 닿아있는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을 만큼, 여름에 평안하기란 너무 힘들다는 걸.
이곳에 서보니 정말 그렇다. 불같은 하늘 아래 잠잠한 건, 오직 바닷물 뿐이다.
8년 전, 튀니지 국민들은 그 바닷가의 침묵을 깼다. 들끓는 목소리로 그동안의 독재 체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아랍 세계의 민주화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격언을 증명해내듯 시민 혁명은 연쇄작용처럼 퍼져나갔다. 견고해 보였던 독재 권력은 시간이 다 되었단 듯이 곳곳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렸고 외신들은 이를 ‘아랍의 봄 (Arab Spring)’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봄이라. 8년이 지난 요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가 않다. 일각에서는 혁명의 실패라고 한다. 혁명 전보다도 실업률이 악화되었으니. 경제성장은 곤두박질치고 있으나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상황이니. 그 사이에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 국가(IS)에 젊은이들을 가장 많이 보내는 '테러리스트의 저수지'가 됐으니. 나라 운영이 중단된 이 상황을 차라리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봄이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지가 않다.
아랍 세계는 무더위를 지나는 중이다. 튀니지는 그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여전히 민주정부를 정착시키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혼돈의 계절은 쉬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너네 나라 아름다워서 참 좋겠다”라고 했을 때, 그들은 “혁명 전에 오지 그랬어. 그때가 파라다이스였는데…”라며 허망한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번영 없는 혁명은 그들에게 짚신 한 짝처럼 무의미하단다. 민주화를 쥐었는데, 개인의 삶에 행복이 없는 낯선 상황에 되레 갇혀있다. 나라 전체가 자유 앞에 이방인이 된 셈이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여름도 이곳처럼 더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프랑스 대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후 몇백 년의 여름이 지나고서야 지금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굳혔다. 여름의 뜨거움에선 6월 항쟁도 느껴진다. 우리가 비로소 쟁취한 삶의 기틀이다. 이제 이 곳 튀니지에도 민중의 힘으로 얻은 자유가 있다. 절망의 역사, 억압의 역사가 있다.
봄은 왔다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봄 위에 여름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은 완전히 새로운 문법을 가져온다. 그 생경함은 기존의 안락을 굴복시키기도 한다. 절망적일 때도, 수락할 수 없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 뫼르소를 통해 카뮈는 말한다. 여름은, 견뎌야 한다고, 여름의 감각을 견디지 못한 자, 유죄라고.
홑겹의 봄보다는 겹겹의 여름이 행복을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믿고싶다. 내 가슴은 '아랍의 여름'을 기대한다. 아프리카의 여름은 유난히 길고 오늘이 길수록 미래는 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