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계절에 저문

우주에서 온 일기장

by 소문자cho
우리보다 5년이나 먼저 첫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이스라엘. 아픔 속에서 발견한 작은 기적의 기록.



2003년, 나는 이스라엘 첫 우주비행사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그의 이름은 일란 라몬이었고, 텔아이브에서 제일 큰 건물의 외벽엔 그의 사진이 현수막으로 걸려 있었다. 주황색 우주비행복을 입고 두 다리 위엔 헬멧을 돌려놓은 모습이었다. 살짝 웃는 얼굴로 오른쪽으로 돌아앉은 그의 왼팔 어깨 아래엔 이스라엘의 국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와 우주로 올라갈 다윗의 별이었다. 시내 곳곳에 붙은 그의 얼굴은 사람들과 지그시 눈을 맞췄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국민적 영웅이었다.


모두가 첫 우주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학교에서도 작은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봤다. 우리는 둘러앉아 투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컬럼비아호를 봤다. 그 앞에서 사람은 하나의 점에 지나치지 않았다. 일란 라몬이라는 점이 우주선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28번째 우주여행을 앞둔 기체의 덩치에 압도당해버렸다. 우주선의 문이 닫히고 발사까지 한참이 걸렸다. 내내 같은 화면만 일렁였다. 그러나 둘러앉은 초등생 중 누구도 그 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우린 그 순간의 무게를 감각하고 있었다. 숭고한 정적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중계 카메라는 이제 우주선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 큰 철덩이가 제 몸집보다 큰 화염을 내뿜었다. 화면이 흔들리고 잠시 희미해졌다. 몽실한 구름길을 내며 우주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지켜보는 모든 이의 목구멍에선 탄성이 빠져나왔다. 우주에 가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도 그 ‘너머의 세계‘에 가보고 싶었다. 바닥과 천장,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 매일 다른 벽을 바닥 삼아 생활해보고 싶었다. 꼼짝없이 식탁 앞에 앉아하는 식사는 시시하다. 유영하듯 돌아다니며 진공 포장된 음식을 작은 구멍으로 빨아먹고 싶었다. 혹시 내가 커서 대한민국의 첫 우주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이같은 박수갈채를 보낼까. 두근거리는 꿈을 품었다.


발을 땅에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상공을 지나 무한한 공간까지 다다르는 것. 그것도 끝장나게 으리으리한 로켓을 타고. 그건 일상의 반대말이자, 특권의 동의어였고, 내가 본 것 중 기적과 가장 가까운 일 같았다.




보름이 지나고 봄의 기적이 가지마다 새싹을 움트던 어느 날. 일란 라몬의 아버지가 아들의 귀환을 다루는 특집 생방송에 출연하고 있던 아침이었다. 우주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영웅이 사망했다.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사고에서 생존자는 없었다. 발사 시에 벗겨진 작은 단열재의 파편이 충돌한 것 때문에 뚫렸다고 추정되는 구멍이 대기권 재돌입의 고온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었고 모든 것은 파편이 되어 흩뿌려졌다. 사고에 대한 보도는 신문의 모든 면을 무거운 잉크로 적셨다. 도심의 현수막은 아주 오랫동안 내려오지 못했다.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여 침통했다.


그는 봄에 저물었다. 인간계에서 이만큼 특별한 삶을 산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일란 라몬, 그는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1981년의 위험천만했던 이라크 핵시설 공습에 참여한 최연소 조종사로 어린 나이에 이미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더욱 전진했고, 이스라엘 최초의 F-16 조종사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엘리트라면 엘리트였고 신화라면 신화였다. 그래도, 궁극의 신비는 지구 바깥에 있을 거라 믿었던 그는 이윽고 이스라엘의 첫 우주인이 되었다. 혹독한 훈련들이 많았을 삶이다. 하지만 그의 땀방울은 내내 믿었을 테다. 지평선이 사라지고 모든 경계가 없어지는 그곳으로 날아오르기만 하면 훈련의 역경도 소멸해버릴 거라고. 인간은 그렇게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참사 후 사람들은 사뭇 다른 종류의 기적을 보았다. 인간은 만들어낼 수 없는 일. 인간은 인과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 6명의 동료와 우주선 기체의 어느 부품도 남지 못한 사고의 잔해에서 일란의 일기장이 발견된 것이었다.


불길에 그을린 종잇장들은 다만 늪지대에 빠져 젖었고 너덜너덜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거라고 짐작되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히브리어로 적힌 일란의 우주 기록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기도로 서서히 복원되었다. 인간 이해의 끝, 그 ‘너머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이곳의 슬픔을 위로하는 선물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기적. 가장 놀라운 기적들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우연에 의한 일들이다.


얼핏 기적이란, 가끔에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힘겨움 속에서, 혹은 모든 희망이 저문 곳에서.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기적이라면, 세상은 기적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매일 빛 가운데를 걸어 다닌다. 누구도 빛의 본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우린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것도, 지구 한가운데에 구조될 필요도 없이 살아가는 것도, 모두 기적이 아닌가.


문득 중국 속담이 떠오른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 가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점처럼 작은 인간, 그들이 만든 큰 우주선,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우주라는 공간. 기적은 그뿐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밝히는 빛, 살을 맞댄 온기. 매일매일의 일도 기적일 수가 있다. 지구별은 온통 기적으로 찼다.


삶은 얼마나 많은 기적의 연속일까. 반복되는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 중,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는 아주 작은 확률 아닐까. '기적의 사나이' 일란 라몬은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로부터 태어났다. 한 사람의 일생에 수많은 기적들이 숨어있다. 나 역시 누구와도 같지 않게 태어났고, 내가 걸어온 발자취는 어디에도 두 번 존재하지 않는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사람은 기적을 남긴다.




1) 더 자세한 내용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