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문화의 ‘사군자’를 뛰어넘는 ‘군자’를 아프리카에서 발견하다.
가끔 양재 꽃시장에 간다. 근처에 갈 기회가 생기면 거의 무조건 들리는 편이다. 나는 연희동에 살고, 먼 길 온 것이 아까워서 기꺼이 시간과 돈을 쓴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곳은 작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식물들이 볼거리이며, 그렇게 펼쳐진 꽃밭을 사뿐사뿐 걷는 탐험이 즐길거리다.
그러다가 수형이 멋진 선인장을 보게 되면 지갑을 열어 사정을 들여다보고 조심스레 가격을 묻는다. 거의 언제나 희망 가격을 넘는 액수를 듣는다.
조금 슬픈 눈으로 말해본다.
“너무 비싸요...”
“그럼 작은 거 사. 작은 거 사서 키우면 되지.”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비싸지!”
대쪽 같은 아주머니는 흥정을 위한 제스처에 응하는 대신 종이컵만한 포트에 든 어린이 선인장들을 보여주신다. 옆구리에 겨우 티끌만한 자구를 하나 튼 놈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귀여워서 사버린다. 이런 식으로 들인 선인장이 베란다에 서른 개나 있는 상태지만. 이미 개를 세 마리나 키우는 모 친구가 애견샵 창 속의 강아지를 보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듯 오늘도 빼놓지 않고 남쪽 마을에서 초록 기념품을 챙겨간다.
북행 버스에 앉아 두손에 들린 엄지만한 새 식구를 보며 생각한다. 대체 어느 세월에 널 키울까. 선인장은 천천히 자란다. 너무 천천히 자라서, 변화 같은 걸 지켜볼 수가 없다. 몇 달이 지나도 같은 모습이고, 몇 년 전 사진을 꺼내봐야 비교가 가능하다. 시간이 돈이라면 선인장을 키우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 무릎까지 오려면 원통 선인장의 경우, 25년은 부어야 한다.
그렇다고 선인장을 탓할 순 없다. 얘네들 고향이 사막이라서 그런거니까. 무릇 고향이란 나의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주어지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나를 둘러싼 환경이고, 생채기 난 숙명이라도 받아들여 그에 맞추어 살아내보는 것이다. 사막은 물은 너무 적고, 빛은 너무 많으며, 온도는 너무 높은, 그야말로 생장을 위한 최악의 조건만 모아 갖췄다. 선인장에게는 생사의 문제가 언제나 생육의 문제보다 먼저인 셈이다. 하여 오늘 마신 물로 곧바로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 대신 몸에 저축한다. 형편이 허락하는 해에만 자란다. 아주 더디게.
최근에 선인장이 또 하나 늘었다. 연희동 베란다 최초 비행기 타고 온 식구다. 이번 선인장은 양재 꽃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아프리카 사막에서 바로 왔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대충 카이로완(Kairouan)쯤 도달하면, 슬슬 사막이 시작되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거기서 거대 선인장들을 보았다. 차라리 나무였다. 가시가 아니라 가지였다. 뾰족한 끝을 사방으로 내뻗고 있었다. 그리고 자구 한 개가 허벅다리만 했다. 양재동에선 구경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야생 선인장이라면 대체로 황량하고 한적한 사막 모래 위에 한두 그루 정도 있을 줄로 상상했다. 그러나 길 양가에 빼곡하게 엉켜서 끝없이 뻗어있었다. 이렇게 많은 선인장, 이렇게 일정하게 웅장하고 촘촘하게 심긴 선인장이라니. 강황색 땅을 딛고 선 군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막이, 울창했다. 그 바람에 나는 마음에 조금 주눅이 올 뻔했다. 내가 제공하는 보살핌이 사막 환경만도 못해서 우리 집 선인장들은 감자칩만하고 바나나킥만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탐스럽게 우람한 선인장들이었다.
나는 노변에서 만난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렇게 큰 선인장은 나이가 얼마나 된 거냐고. 그랬더니 아저씨는 조금 신기한 눈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이보다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몇 년쯤이냐고 나는 되물었다. 아저씨가 코리안 소녀의 집요함에 놀라지 않게, 아빠가 부연설명을 보탰다. 얘가 집에서 선인장을 키운다고. 그랬더니 아저씨는 빨리 어떤 숫자를 떠올리려는 듯 눈을 조금 굴리더니 메이비(maybe)... 50년? 이라고 말했다.
“50년! 와, 그러면 되게 비싸다, 한국에선!” 내가 소리쳤다.
“그러냐. 튀니지에선 당나귀에게 준다”라고 반문하는 그의 옆에는 당나귀 한 마리가 선인장을 질겅질겅 뜯고 있었다.
너에게도 조금 주겠다며, 아저씨는 제일 작은 자구를 하나 똑 떼어 내게 건넸다. 베베 꺅뚜스(bébé cactus)랬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아가 선인장’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흙에 심으면, 그대로 뿌리를 내려서 하나의 선인장이 된다. 나는 남쪽 여행이 끝난 후 한국으로 가져온 초록 기념품을 빈 화분에 꽂았다. 두 달쯤 이따 흙을 파보니, 그새 실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대박.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고 했다. 책에서 그렇게 읽었다. 연희동 베란다는 나의 관리하에 흙의 습도, 공기의 온도가 적절하게 맞춰져 있다. 여름엔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보충해준다. 겨울엔 실내에 들여 LED 광원을 쫴 준다. 필요하다면 영양제도 사다 줄 것이다. 그럼에도 선인장들은 내 마음처럼 빠르게 자라지 않는다.
많은 물을 흡수하지 못한다. 영양제는커녕 배수가 잘되는 척박한 땅을 요구한다. 타국살이가 오래되면 이곳의 일상에 적응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선인장들은 고향을 기억하는 듯하다. 식물에게도 그런 본능이 있을 테다. 꿈결에 사막의 따듯한 모래바람이 떠오르는지, 킁킁대며 인사하던 당나귀의 숨결이 그리운지, 떠나온 그곳이지만, 여전히 나를 키운 것들을 찾는다.
그러니 사막에서 선인장을 튼튼하게 키우던 건 물도 적당한 온도도 아니다. 오로지 시간이다. 50년의 인고다. 시간을 간과하고 자라는 것들은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빈 것들 뿐이다.
목대를 잘못 베면 바로 죽어버리는 여느 식물들이 있다. 사막에 살지 않는 식물을 사막으로 옮겨도 바로 죽어버린다. 선인장은, 1만 킬로미터를 옮겨 심어도 뿌리를 내린다. 어떤 환경에도 결코 적응한다. 그런 놀라운 유연함으로 자신을 지킨다. 선인장은 아는 것 같다. 척박한 환경이 주어질 때도, 모두에게 동일하고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는 걸. 시간을 먹고 자라는 것들은, 천천히 얻어지는 것들은, 쉽게 뺏기지 않는다는 걸. 어디서든 계속되는 선인장의 삶은, 오래 걸려 견고히 다져지는 것들의 가치를 말하는 것 같다.
선인장은 그렇게, 생긴대로, 어디서든 잘 산다. 주변 여건이 나아졌다고 갑자기 몸집을 키우며 나대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이 어렵다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선인장은 자기 본성을 잊지 않는다. 선인장은 오랫동안 자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이렇게 쓴다. “어떤 사람이 자기 또래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그가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북소리의 박자가 고르든 늦든,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중략)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누구나 내면 깊숙히 자기만의 북소리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에 맞춰 나의 인생을 걸어갈 순 없는 법. 비올 때 우후죽순 자라는 대나무보다, 본성에 발을 맞추는 선인장처럼 살고 싶다. 나는 ‘사군자’ 대나무보다 베란다의 선인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선인장은 자기 영혼의 음률을 듣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