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노래 노라면 망고 망고는 맛있어

망고의 맛은 몬순에서 난다

by 소문자cho
여름 과일인 줄 알았지? 망고가 맛있는 이유는, 사실 가을 때문이래.



나는 금수강산에서 왔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여름만 긴 이스라엘이나 겨울만 긴 러시아와는 다르지.


나는 그런 자부심으로 가을을 그리곤 했다. 내게 가을은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의 색들이었다. 미묘하게 흐르는 색조 팔레트, 노랑이 빨강이 되기까지 모든 빛깔이었다. 국화색, 곡식색, 은행색, 단풍색, 홍시색이었다.




가을을 가진 것보다 더 큰 행운은 없는 줄 알았는데, 파키스탄에서 조금 흔들리고 말았다. 망고 때문에.


파키스탄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한 나에게 아빠는 “거기 망고가 그렇게 맛있대. 소현이 망고 좋아하잖아”라고 했었다. 가서 실컷 사주겠다는 말을 듣고, 망고는 어디서 먹어도 환상적인 맛이니까 파키스탄까지 갈 필요 없다고 대들었었다. 아빠는 내가 초딩인 줄 아냐며, 고딩이라며, 여지껏 먹을 걸로 회유하냐며.


이제 보니 파키스탄에서의 그리운 기억 중 망고가 갑이다. 그곳에서 나의 미각은 전무후무한 경험을 한 것이다. 코코넛처럼 부드럽기도 하고, 복숭아처럼 새콤하기도 하고, 꿀에 절인 듯 단 파키스탄 망고. “한우는 횡성, 망고는 파키스탄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을은 없지만, 대신 망고가 나니까, 그런 특별한 맛을 낳는 아열대 기후가 부럽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시장에 가면 다양한 품종의 망고가 진열돼 있었다. 팔레트의 칸을 넉넉히 채운 물감처럼, 각 매대에 빛 좋은 빨강과 노랑이 쏟아져 나올듯이 수북이 쌓여있다. 천사 망고, 신드리 망고, 랑그라 망고가 종류 별로 한 칸씩. 문경사과, 대구 사과, 청송 사과처럼 각 지역의 자존심을 건 망고들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껍질의 색과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물론, 맛도 각자의 개성이 다르다.


망고 왕국에서는 초호화 생활이 이어진다. 동네 오일장을 다녀온 아빠가 리어카에서 장 봐온 과일을 내린다. 망고 열 바구니. 1kg에 500원 꼴이라 이렇게 됐단다. 겨울철 귤 먹듯 한가득 쌓아두고 먹는 게 망고다. 이전까진 회 뜨듯 껍질을 벗긴 후 바둑판처럼 잘라서 천천히 음미했던 망고. 씨에 붙은 과육까지 꼼꼼히 빨아먹었던 망고. 그러나 파키스탄에선 게걸스리 갈비를 빨 필요가 없다. 수시로, 큼직이 썰어서 한입 가득 밀어 넣었다.




가을을 그리워할 틈도 없었다. 은행 단풍을 잊고 살았더니, 물기 머금은 노랑을 보면 애먼 군침이 돌았다. 오 망고색!


파키스탄처럼 여름이 긴 나라들은 가을 특유의 불그스름한 풍경이 잘 없다. 그 기간에 비가 내렸다. 몬순기라고도 했다. 그건 여름의 끝자락, 서늘해진 날씨와 함께 왔다. 겨울의 입장을 알리기도 했다. 몬순 비는 뜨겁게 단 대지를 식히는 굵은 비였다. 낙엽은 물들 틈도 없이, 파릇한 잎사귀의 모습으로 빗물에 떠내려갔다. 그렇게 추적추적 며칠을 내리는 비를 볼때면 여름이 갔구나, 생각했고 가을은 생략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으레 파키스탄엔 가을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망고는 여름이 긴 기후에서 나는 건 줄 알았다. 망고 농사는 특별히 까다롭지가 않아서 기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잘 자란다고, 뒤뜰에 망고 나무를 키우던 옆집 가드너가 알려주기 전까진. 그는 나무 밑동에 분무기도 아니고 양동이로 물을 주면서, 망고 농사에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오히려 넉넉한 강수량이라고 말했다.


물이 망고 나무와 열매의 품질을 판가름 짓는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 비가 내리는 계절은 오직 몬순기다. 가을 대신 자리 잡은, 몬순기. 파키스탄의 가을은 단풍 대신, 빗줄기를 데려온다. 비가 많이 내리는 가을일수록, 망고 묘목은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섭씨 18도 안팎의 날씨에서 망고 나무는 생장이 완만해진다. 기온이 낮을수록 개화도 잘 일어난다.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망고 열매가 열리게 하는 것도, 몬순이 하는 일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망고 열매가 태어난다니. 망고를 낳는 것은 넉넉한 여름이 아닌, 넉넉한 가을비였던 것이었다. 가을 없이 파키스탄은 망고 왕국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 한국이건 파키스탄이건, 가을은 노란색을 데려온다니, 재밌는 발견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맹숭맹숭할 때, 가을이 좋다. 누가 가을을 죽음의 계절이라고 했는가. 파키스탄에선 생명의 계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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