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도시와 지난밤에 내린 생크림

by 소문자cho
모스크바의 무채색 정경은 말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내포한달까.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심상에 떠오르는 닮은꼴이 있다면, 비유가 적당하다. 초라하게 나뒹구는 가을 낙엽을 ‘망명 정부의 지폐’로, 하얀 상고대를 ‘정신의 흰 뼈’로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감상의 특징은 비유의 대상이 되는 두 가지 개념이 서로 거리가 멀수록 신선해진다는 것.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니, 모스크바의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내 눈엔, 거대한 생크림 케이크다.


엄격하게 대칭적인 모습과 층층이 쌓아 올려진 균형적인 모습. 층이 높아질수록 통은 좁아진다. 건물의 모서리는 레이스를 두른 듯 작은 디테일이 수놓아져 있다. 목조 창틀은 제각기 알록달록하니 창틀 중 같은 무늬는 없다. 모스크바의 고풍스러운 시가지, 거리마다 늘어선 건물의 모습이다. 이런 19세기 특유의 건축 양식은 '케이크’처럼 생긴 모습으로 모스크바의 정경을 채운다.


건물 위엔 성 바실리 성당의 화룡점정인 돔 형태의 지붕이 올려진 것을 간간히 보인다. 이 돔은 모양 때문에 흔히 ‘양파’라고 불리는데 유심히 보면 양파보다는 머랭 쿠키 같을 때가 있다. 꼭지를 향해 돌돌 감긴 무늬 하며,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 하며. 지난밤, 위에 살짝 생크림이 내려앉은 틀림없는 머랭 과자.


모스크바의 눈은 입자가 곱고 희고 풍성하다. 생크림과 가장 비슷한 무엇이다. 모든 흠결을 감춰버리는 아이싱으로 매일 밤, 이 도시는 새 단장을 한다. 복슬복슬 작고 연약하지만 뭐든지 덮어버리는 눈송이들이 서서히 덮어온다. 울퉁불퉁 빵의 표면 위에 매끈히 입히는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도시를 감싼다. 밤새 걸려 천천히, 그러나 두텁게. 눈이 있는 모스크바는, 하나의 거대한 케이크다.


아침 첫눈엔 온통 하얗고 깨끗한 순백의 신부 같다. 어딜 보아도 얼룩 하나 없다. 눈의 여왕이 지르밟고 지나갈 것 같은, 그래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을 것 같이 흰 땅.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창문 앞에 자리 잡고 몸을 찬 유리에 밀착시켰다. 갓 만들어진 케이크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하기 위해.


오래 남아나질 않는 풍경이니 빨리 눈에 담아 두는 게 좋은 편이다. 해가 높게 떠오르며 도로엔 차들이,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는데, 그때 눈송이들은 발걸음에 때 타버리고 녹아서 진창이 된다. 갓길에 쌓여 매연과 흙을 만나기도 한다. 먹기 위해 파헤친 케이크. 손이 닿을 때마다 안쪽의 초코 시트를 드러내며 얼룩덜룩해지는 케이크처럼.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나는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모퉁이의 눈을 찾아 내 발자국을 새겼다. 온통 장난질을 쳐놓았다. 발길로 뒤적일수록 눈송이들은 흙을 만나 뒹굴었다. 밤이 오기 전까지 마음껏 거뭇해지는 중이다. 내일은 또 새로운 케이크를 먹겠지. 오 달콤한 도시, 모스크바의 무채색은 어쩐지 달콤한 심상을 남긴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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