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문자cho Oct 16. 2020

쥐 없어! 구녕 조심!

맨홀 도둑과 도마뱀보다 더한 애들

우리 집의 옆 옆 집은 큰 식당이었다. 풍문으론 유명한 곳이랬는데 가본 적은 없다. 누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절대 안 갔다. 거긴 쥐가 득실댔기 때문이다. 쥐가 싫다. 주방문이 하필 우리 집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래도 식당은 날이 갈수록 잘 됐다.


쥐가 많은 곳엔 필연적으로 고양이가 모인다. 식당 주변은 온 동네 고양이들의 놀이터였다. 고양이들은 놀다가 우리 집 안으로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식당에선 고양이들을 호되게 내쫓았기 때문에 인간만 보면 기겁을 하는 아이들이었다. 한 마리는 진공청소기 미는 엄마를 보고 혼비백산해 발이 꼬여서 대리석 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출구를 찾아 창문 유리마다 달려들었다. 쿵 쿵 쿵. 몸을 사정없이 부딪히는 그 소리가 너무 끔찍해서 황급히 대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나가는 시늉으로 고양이에게 나가는 길을 몸소 보였다.


고양이에게 출구를 안내한  대문 잠금장치를 제대로 물리지 않았던  같다. 그날  도둑이 들었다. ‘생선 도둑' 아니었다. 그는 현관 바로 앞의 맨홀 뚜껑을 훔쳐갔다. 도난품이 맨홀 뚜껑이라니, 정말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에게  사실을 알렸더니, 쇠도 팔면 돈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걸 어떻게 가져갔을지는 여전히 미궁이었다. 공구 같은 것을 휴대하는 ‘이었을까. 근데 집주인은 도둑에게 애먼 공감만 해주고  맨홀 뚜껑을 사다 주진 않았다. 아빠는 누가 무심코 발을 디뎌 맨홀 구멍에 빠질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갑자기 귀가 밝아졌고 누가 현관 문을  때마다 “구녕 조심!”이라고 자동음성기처럼 외쳤다. 잡초를 뽑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골목길 고양이들이 새끼 낳는 철이 왔다. 한 마리는 우리 집 담장 안에 새끼들을 숨겨뒀다. 아기 고양이들이 걸음마 떼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새끼들이 발을 헛디뎌 구녕에 빠질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 가족이 나오면 현관에서 통행 안내를 했다. 구녕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어미 고양이는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열었고 나를 보면 몸을 기대고 골골댔다. 그러던 어느 아침. 핏빛 광경을 보게 되었다.


대여섯 개의 쥐 사체가 놓여있었다. 꼬리는 모두 한 방향으로 평행하도록 정리돼있었고, 몸은 여기저기 뜯겨 있었고 털도 뽑혀있고 목이 끊어진 애들도 있었다. 처참하고 가지런했다. “널 위한 선물인가 봐.” 기사님이 말했다. 나는 고양이의 선물을, 아니 소행을 보고 0.1초 만에 도망을 갔다. 기사님은 고양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런 거라고, 기분이 나쁠 일은 아니라고 중얼거렸다.


고양이가 쥐를, 그 사냥 전리품을, 진열하는 일은 그 이후로도 일어났는데, 보통은 기사님이 먼저 치워주셨지만, 나는 한순간도 방심할 순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엔 아빠한테 밖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일과처럼 아침마다 “쥐 없어! 구녕 조심!”이라고 외치게 되었다.


고양이가 잡고 기사님이 버리시니까, 나는 아빠를 앞세운 조심성만 발휘하면 다시는 죽은 쥐와 조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어떤 순간에도 이만하면 다 겪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쥐도, 구멍도.


밤중에 물을 뜨러 간 어느 날이었다. 부엌 안은 컴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판 위에 있는 적색 양배추가 정수기 뒤쪽으로 스윽 움직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방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나는 양배추가 스스로 움직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확인하고 싶어져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에 나오는 머리가 7개 달린 쥐였다!


농담이다. 머리가 몇 개였는지는 못 봤다. 내가 본 건 육덕지고 탱탱한 엉덩이였다. 몸은 숨겼는데 꼬리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있었다. 털이 쭈뼛 선 검은 허벅다리의 근육이 조금 펌핑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숨을 멈췄다. 그 순간, 꼬리의 마디마디가 수축하더니 쥐는 순식간에 오븐레인지 뒤쪽으로 도주했다.


아침이 밝자 엄마가 오븐을 통째로 뜯어냈다. 그 뒤에는 구멍이 있었다. 세상에, 집 밖에서 부엌 안까지 연결되는 굴이었다. 그 탄력 있는 다리 근육으로 팠을 것이다, 그 안에서 생포된 쥐가. 기사님 맨손에 잡혀서 골목길로 내보내졌다.


<톰과 제리>를 보면 제리가 벽 뒤에 방을 짓고 산다. 그 안엔 보석함 소파와 지폐 카펫 같은 가구도 있다. 이 만화가 현실 고증이 확실한 게, 쥐를 끌어내고 들여봤더니 벽 안에 쥐의 살림과 소지품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동안 부엌에서 서리한 각종 음식물이 각설탕 크기로 다듬어져 있었다. 무슨 용도였을진 모르겠으나 나무 조각과 휴지 같은 것도 챙겨둔 상태였다. (혹시 이불?) 냄새가 지독했다.


집에 들어와 슬랩스틱을 선보이던 고양이는 이놈을 쫓던 ‘톰’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우리 집 바닥에는 거대 구멍이 있고, 아빠는 현관문과 음성 동기화 되어있고, 기사님은 출근만 하면 쥐를 치워야 하고,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그동안 부엌에서 음식물이 사라져 온 것도, 다 제리 요놈 때문인 것이었다. 얘네가 도마뱀보다 더한 애들이다. 그 엉큼한 구멍을 시멘트로 다 막아버려도 쌌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하우스메이트와의 첫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