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도 도마뱀 살충마라는 첫인상을 남겼겠지만 (이전 화 참고), 학교 생활에는 잘 적응해갔다. 전학 간 학교는 작고, 컸다. 얼마나 작았는지, 학생수가 서른 명 내외였다. 한 반이 아닌, 전체 고등학생 수가 그랬다. 학교에 들어선 지 몇 시간 만에 모두와 인사를 나눴다.
우리 학년에는 여덟 명이 있었다. 8은 수월한 숫자였다. 이런 저런 써클이 없는 한번에 다 같이 어울리는 숫자였다. 이 학교엔 “똑똑한 애”도, “예쁜 애”도. “힘 센 애”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다. 모두가 서로의 복잡하고 특별한 모습을 알았다. 어떤 척을 하려는 자도, 숨겨지는 것도 별로 없었다. 점심시간엔 누구와 앉을까 따위의 초조한 전학생 류 고민은 모두 생략이었다. 내심 했던 걱정들이 무색했다. 나는 이 학교를 단번에 만났다.
이 작은 학교가 얼마나 컸는지, 전용 대지가 삼만 평에 이르렀다. 대강당, 노천극장, 실내 운동장 하나, 실외 운동장 두 개, 육상 트랙 별도. 테니스코트 옆에는 수영장과 한 번에 100명은 앉을 관중석도 있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부 합쳐도 백 명이 안 되는 학생을 위해 삼만 평의 교육 인프라를 운영하는 곳. 무슨 사연일까.
왕년에는 제법 규모 있는 학교였단다. 학생 수도 많았고, 활기가 넘쳤다. 남아시아권에서는 내로라하는 교육 수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이 생겨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선포한 90년대를 지나며 서서히 국내 위험이 고조됐다. 이슬람 세계는 이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여러 사건 사고가 이어지는 2000년대를 보냈다. 2008년, 이슬라마바드 시내의 한 호텔에서 큰 폭발 테러가 있고 난 후 UN 직원, 외교단, 사업가 등 마지막 남았던 외국인 가족들마저 본국으로 철수했다. 그 바람에 학생 수가 급감했고, 텅 빈 건물은 세월을 견뎠지만 국제학교라는 이름은 무색해져 버렸다.
남은 학내 구성원은 거의 파키스탄인이었다. 이런 상황에 입시를 앞둔 딸을 데려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했지만, 학교에선 반겼다. 드디어, 간만의 외국인이었으니까. 그래, 여기는 국제학교였으니까!
등교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기사님이 오셨다. 첫날은 꾸불꾸불한 글씨로 학교 주소가 적힌 종이 조각을 손에 쥐고 오셨다. 크림색 캠리의 운전대를 잡으셨을 땐, 처음 가보는 동네라고 하셨다. 수년의 운전 경력동안 그쪽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출근길에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다고 하셨다. 그런데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래서 헤맬 수도 있다고 하셨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슬라마바드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던 기사님이 창문을 내리고 몇번째일지 모르는 길을 물으셨다. 기사님은 조금 더 들어가셨다. 짓다만 초소 같은 것과 마른 잡초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골목까지 미쳤을 때, 길의 양 차선에 위협적인 철 구조물이 생겨났다. 기사님은 그것을 피해서 꼬불꼬불 S자 운전을 하셨다. 군사분계선 내지는 민간인 출입통제선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학교 정문에 도착하면 눈 앞에 두꺼운 성벽 같은 것과 그 위의 첨탑이 보였다. 검문소 같은 것에서 경비가 나와 고개를 들이밀고 뒷좌석까지 눈을 맞췄다. 높은 벽은 그 뒤에 무엇을 숨겼는지 철저히 감췄다. 꼭대기에서 삐져나온 총구가 아래를 향해 있었다. 학생마다 전용 카드를 발급해주었는데, 그것을 벽에 난 작은 구멍 앞에서 꺼내 들면 경비가 전기 소리가 나는 버튼을 몇 초간 눌렀고, 안에서 철컹하고 철문을 열어주었다.
방 안에 들어서면 다른 경비가 이 카드를 회수해갔다. 거기 모인 카드로 학교 내부에 있는 학생들을 알 수 있었다. 역으로는 안 온 사람도 알 수 있었다. 지각했을 때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이번엔 쇠 파이프가 맞물리는 회전문을 통과한다. 끝 지점에 마지막 경비가 서 있었다. 이분만은 수행하는 동작이 특별히 없으셨다. 몸은 서 있었지만 표정은 1초 뒤 잠들 것 같았고, 입모양으로 인사를 건네면 늘 똑같은 미세함으로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정문은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관문이 남았다. 학교를 두른 세 겹의 벽돌담이다. 중간에 한 번씩 끊긴 담장은 실물 미로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올 땐 인도가 필요했지만, 현관 비밀번호를 몸이 기억하듯, 학교와 구면일수록 ‘우 쪽으로 두 번 좌로 한번’을 익숙하게 다녔다. 국가 일급 보안 시설 뺨칠 것 같지만, 학교였다.
이렇게까지 보안이 삼엄한 이유. 이슬라마바드에선 민간 시설과 외국인들이 모인 곳이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근교의 다른 외국인 학교는 몇 년 전 무장 공격을 받아서 6명이 숨졌다. 우리를 둘러싼 시대가 그랬다. 외부 위협은 두텁고 치밀한 방패를 필요로 했다.
학교에서 정례적으로 테러 대비 훈련을 했다. 수업 중 경보음이 울리면, 모든 창문 블라인드를 닫았다. 학생들은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불을 끄고 내부에서 교실 문을 잠갔다. 그렇게 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쥐 죽은 듯하는 훈련이었다.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밖에서 작은 탄을 터트리거나 문을 마구 두드리기도 했다. 그래도 훈련일 뿐이라는 걸 아는 학생들은 별안간 수업이 중단됐단 사실에 들떠서 속닥거림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책상 밑에 쭈그려 앉아 무릎으로 턱을 괴면 난 이런 상상에 빠졌다. 무장 괴한들이 학교에 침입하는 상상. 그들의 차량은 철골 장애물 도로를 굽이굽이 지나고 있다. 학부모 출입 카드를 정교히 복사해서 준비한 용의주도함으로 이곳을 찾아왔다. 출입 카드가 발급되는 사람 중 가장 방문 빈도가 낮은 학부모 인척을 하고 있지만, 트렁크엔 무기가 가득할 것이다.
선두를 맡은 요원이 문 앞에서 카드를 꺼내 들고, 익숙지 않은 낯에 경비는 갸우뚱하는 눈치지만, 안쪽에서 접수 하라며 이내 버튼을 누른다. 문이 열렸다. 공격 개시. 이번엔 칼을 꺼내 들고 순식간에 방안의 경비들을 상대한다. 하나, 둘, 마지막 놈까지. 그런데 마지막인 줄 알았던 놈 뒤로, 또 하나의 실루엣이 보인다. 만성 졸린 눈의 경비. 상황을 인지하고 이내 커진 눈이 되었다. 그는 회전문을 통과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괴한에게 총을 뽑아들지 않는다. 대신 손끝으로 비상 버튼을 움켜쥔다. 늘 가지고 있었지만 한번도 누르지 못한 그것을 누른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교내에 익숙한 경보가 울리고 학생들은 질서에 따라 숨어든다. 그 시각, 무장 무리가 합류하고, 철제 회전문을 한 명씩 통과하지만 문이 일정 속도로만 돌아가서 답답하고 유리가 아니라 깨부술 수도 없는 것이다. 학교로 들어선 괴한들은 붉은 담벼락까지 내처 달리고 힘차게 총기를 장전한다. 그런데 잠깐. 벽 뒤에 또 벽이? 침입자들은 미로 앞에서 조금 우왕좌왕하지만 이내 두 명은 왼쪽, 두 명은 오른쪽으로 찢어진다. 그러나 벽은 두 겹이 아닌 삽겹이었으니 또 다시 찢어져 길 찾기에 빠진다.
조금 기운 빠지는 등장이었지만, 드디어 건물이 보인다. 세상에, 드넓은 땅 위에 단층으로만 지어져 있다. 사방이 교실문이다. 서른 명의 학생들은 어느 문 뒤에 모여 있을까. 이 학교의 공실률을 고려한 확률은 1/15 정도다. 그렇게 방문을 하나씩 부숴보다가 지난한 숨바꼭질에 결국 현타가 와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들어온 것도 대단한 거라며 서로 격려를 할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며 슬슬 다음이나 기약할지도 모른다. 테러리스트도 사람일 테니 그런 멘탈에 허덕이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나는 매번 안심이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