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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Jan 31. 2024

똥통 구별법

대학 졸업하고 다니게 된 첫회사엔 못된 상사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비롯한 많은 신입들을) 괴롭혔고, 나는 성공한 50대 여성이 갓 사회에 나온 초년생을 괴롭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 가면 긴장이 풀려서 눈물과 기도가 새어 나왔다. 저 팀장의 귀여운 딸이 나중에 커서 꼭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팀장님 같은 상사 만나게 해달라고, 그래서 밤에 지 어머니에게 속상함을 토로하게 해달라고. 그때 마음 아파하게 해달라고, 지금 내 마음이 아픈 딱 이 정도로만. 그 기도는 매우 간절했다.


직장생활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그 기도가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아주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굴러도 만나게 될만큼. 악연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제목을 <똥통 구별법>이라고 지으니 똥통이라는 단어가 의도에 비해 자극적이다. 제목은 그렇게 뽑는 거랬다. 정말 자극적이기 위해 쓴 것만은 아니고, 밤에 엄마에게 회삿일과 상한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보내준 글이 있었다.


유정옥 사모의 책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속 한 장 한 장을 찍은 사진들이 카카오톡으로 날아왔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에서 살기로 했어.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똥통에 살았어.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 냄새나는 그곳에서 똥 냄새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포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지?"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


세마리 쥐 이야기. 견딜 수 없어도 떠나지 못하는 쥐는 내가 삶에서 끝끝내 바꾸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두려워서 안주하는 수동성에 대해 경계하게 했다. 나는 이 글을 사랑한다.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힘든 처지일 때 위로가 되었지만, 나의 환경을 똥통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단순함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로를 건넸다: 네가 제일 중요해. 너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손절해. 상처는 트라우마가 돼. 너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할 노력은 없어. 넌 할만큼 했고 그들은 변하지 않아.


마취총을 맞은 듯, 이런 말들로부터 순간적인 힘을 얻기도 했다. 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똥통에 갇힌 쥐가 된 듯 스스로를 가여워할 수 있었다. 상황이 변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사람만 선별하여 곁에 두려고 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디서든 조금씩 냄새가 났다. 누구에게나 깔끔한 상수도의 모습 뒤에 하수구가 보이기도 했다. 사람은 아무래도 쥐가 아닌데 여기가 똥통인지 아닌지, 짐을 싸야 하는지 이별을 고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별해야 하나. 악연과 불행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곳간을 찾은 사람은 정말 있다고 가르치는 쥐 이야기. 그건 어떻게 하는 걸까.


썩 내키지 않는 종류의 힘을 내야 했다. 가장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을 바꾸는 것. 우리는 그걸 용기라고 부른다. 나의 조금은 못된 상사. 이미 나보다 높은 지위와 권위를 가졌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녀 앞에서 나의 자세를 더욱 구부려 낮추었더라면 어땠을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부정적인 행동을 적극적으로 달래드렸다면? 두려움과 맞서야 하는 일이다. 나처럼, 그녀 역시 그녀의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테니, 고개를 떨구고 힘들어하는 대신, 그녀의 상사 앞에서 그녀의 장점을 치켜세웠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뭐라도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그랬다면, 나는 밤중에 울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똥통인지 아닌지.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을 내어줄 용기. 누구에게든 새 기회를 줄 수 있는 용기. 해진 마음으로 내긴 더더욱 힘든 용기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넉넉할 때 똥통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용기의 반대말이 안주라면, 어떤 도망은 안주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용기내기보다 쉬운 방법으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을 때 그렇다. 쥐 이야기는 말한다. 안주할 때 변하는 것은 없다고.


이런 종류의 용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를 해본 적이 있는 유능한 사람, 그리고 가치관을 고민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소위 '좋은 사람'에게 특히 어렵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너무 잘 살아온, 어딜봐도 제법 괜찮은 나에게서 찾는 훈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은 선불.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더 내야 한다. 용기든, 아픔이든, 경험이든, 훈련의 시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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