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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Feb 25. 2024

지렁이 밥이 되는 건에 대하여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후가 있다고 믿는 편인데,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지 않고, 우리는 죽으면 그냥 무(無)가 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후세계가 없다면, 무가 되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시트콤 <프렌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스와 레이첼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로스는 그녀가 아직 계신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피비가 말한다. "정말로 아직 계실 수도 있어." 로스와 레이첼이 말한다. "아니야, 그녀는 정말로 죽었어. 다 확인을 했어." 조이가 말한다. "맞아. 죽으면, 그저 죽은 거지. 뭐가 더 있겠어. 지렁이 밥이나 되는 거지." 그러자 로스와 레이첼이 금세 불편해진다. (S.1, Ep.8)


죽음에 대한 나의 입장으로 인해 가끔 단지 종교의 영향을 받은, 또는 본인은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순간에 죽음에 대해 파헤치게 된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 게 유익할까? 우리는 화학적 원소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더 유익할까? 이럴 때면 나라는 존재의 그 생각, 감정, 경험, 고통, 기쁨을 담은 영혼의 크기와 완전한 소멸에 대해 상상해 보게 되고, '정말 죽어서 무가 되는 것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정 1. 無가 된다면.


나의 머릿속은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선택지로 나뉜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반드시 성공을 해서 나의 이름을 후대에 남겨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충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이라도 죽으면 모두 끝날, 자연물에 지나지 않는 육체니 순간의 욕구를 더 추구해도 무방한 것일까. 점점 나은 형편과 성공을 위해 달리는 끝이 이미 정해진 GAME OVER라면, 그 게임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그 게임에서 아등바등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 30대의 연애가 어렵다는 이유에 지난 경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온 세상이 그/그녀뿐이었지만 순간에 모든 것이 종료하는 허무함을 알고나면, 더는 같은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가 않는 것이다. '무'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첫 연애처럼, 끝이 있다곤 하지만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열과 성을 쏟는 그렇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임일까.


이번엔 반대로 사후세계가 있다는 가정을 해본다.


여행을 가기 전에 우리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새로운 땅의 날씨, 음식, 물가, 문화, 삶의 질. 사후세계가 가본 적 없는 여행지였다면, 모든 사람들은 초록 검색창에 찾아보고, 사진을 보고, 후기를 읽고, 고심 끝에 살거나, 죽거나의 결정을 했을 것이다. 정보만 있었으면, 그것이 남의 후기일지라도 의존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가정 2. 좋은 사후.

나는 블로그에서 어떤 정보를 보면 죽을 결심이 들까.


이곳의 화폐는 웃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누구에게든 활짝 웃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답니다. 모든 사람들은 궁전에 살고, 어떤 방식으로든 계급은 없어요. 사람들은 전부 웃고만 있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소유한답니다. 행복해서 이곳에 영영 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네요. 괜찮아요. 사실 저는 이생에서도 재벌이거든요.


이런 블로그 글을 보았다면, 참으로 좋은 곳이 있구나. 나도 꼭 가야지. 비자 취득 요건에 대해서 검색해보고, 준비물을 확인했을 것이다. 가기도 전에 부푼 마음이 생겨버렸지만,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 내일 당장 떠날 필요는 없고 얼른 갈 준비는 시작 해야겠다. 더욱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웃음도 연습하고 어머니 얼굴도 많이 봐두어야지 생각할 것 같다.

 

가정 3. 나쁜 사후.

어떤 후기를 보면 부디 오래 살고 싶어서, 결코 죽기가 싫어서 냉동인간 서비스를 검색해보고 있을까.


저는 죽어서 지렁이 밥이 되었어요. 죽었는데, 육체를 잃고 더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 정신만큼은 또렷했어요. 그래서 지렁이들이 제 몸에 기어오르는 것이 느껴지고 제 살을 잘근잘근 씹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육체가 없어서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답니다. 결국 참을 수 없어서 다시 돌아왔어요. 역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예요.


정답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음 그 자체만큼이나 셋 중 하나를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GAME OVER을 위해 게임을 할 것인지, 나은 곳을 기대할 것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살건지. 첫 번째는 피곤하게 굳이 살 이유가 있나 싶어서 GG 치고 싶은 것이다. 세 번째는 글쎄. 세 번째를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다만, 두 번째를 믿으려면, 세 번째의 가능성을 동시에 믿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가능성에 투표한 대가다.


나에게 '아니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되레 이 지점에서 든다. 2번을 향해 쐈는데, 3번에 떨어지면 어쩌지. 잘 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1번을 선택하고 싶진 않다. 내가 지금 너무나도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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