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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Oct 15. 2020

하우스메이트와의 첫 만남

오셀로와 이아고, 도로시와 서쪽 마녀, 오토봇과 디셉티콘. 무탈한 일상을 깨는 자들은 역사나 문학에나, 우리네들의 삶이나 빠지질 않고 등장해준다. 이들 존재의 특징이라면 비교적 개연성 없이 등장하며, 벗어나기 무지하게 어렵다는 것.


파키스탄에서의 삶이 시작됐을 때, 나 역시 적을 만났다. 깊은 밤이었다. 아직 익숙지 않은 집이었지만 눈이 부실까 불 없이 더듬더듬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 앞으로 살짝 기대는 순간, 전방 5cm. 거울에 붙은 도마뱀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목구멍에선 굉음이 빠져나왔다. 내 몽롱 세계에 침범한 악당이었다. 흉측한 외모부터 완벽한 악당.


말해 두건대 나는 파충류 애호가가 아니고, 그와 가능한 가장 반대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쥐꼬리나 뱀 가죽보다 공포스러운 건 없다. 도마뱀과의 동거라니. 파키스탄에 도착하자마자 알아차린 장르는 스릴러였다.


눈싸움의 고수다. 꿈쩍도 안 한다. 그러다가 눈을 깜빡한 사이에 다다다닥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동작 그만!"을 외쳐도 이미 늦었다. 또 어디로 숨었을까. 싸늘하다.. 도마뱀은 눈보다 빠르다.


네발 달린 생명체 때문에 마음이 소란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도 집안 곳곳에서 출몰하는 도마뱀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도마뱀 가족과 합가였다. 고작 손톱 크기의 아기 도마뱀(귀엽진 않음), 진짜 큰 도마뱀(떨어질 때 탱탱볼처럼 튀김), 꼬리 없는 도마뱀(꼬리는 서랍장 밑에서 발견), 알비노 도마뱀(눈알은 붉음)까지 다양하기도 하지.


한 마리가 옷장문을 열자마자 뛰쳐나와 엄마의 쇄골뼈를 징검다리 삼은 날, 엄마는 녀석들이 건방진 것 같다며, 아빠에게 응분의 대가를 집행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빠는 너무 빨라서 절대 불가능하다며 둘러댔지만 엄마는 끈끈이로 감은 막대 등 여러 포획용 도구를 만들어 제공했다. 시늉이야 하셨지만 그 속도로 휘둘러선 어림도 없었다. 아빠도 도마뱀 잡기가 무서웠던 거다.


이번엔 또 어디에서 날 놀라게 할지 모를 도마뱀을 경계하느라 한동안 새가슴이 되어 벽의 작은 얼룩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지냈다. 밤 중엔 머리맡에서 챡챡챡챡하는 도마뱀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첫 등교날이 다가왔다. 딸이 고3이니만큼 학업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며,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전학부터 알아봤던 터였다. 엄마는 학교에 가면 도마뱀 잡는 법을 물어보라고 했다. 현지 생활의 문제는 현지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니까. 덫이라던가 기피제라던가 그게 아니라면 민간의 방법이라도 알려줄 수 있겠지 싶었다. 새 친구들과 대화의 문도 열고, 내게 작은 도움을 주며 친해질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도마뱀을 잡는다고?”

“응, 이사온 집에 도마뱀이 많더라구”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학우들은 하나같이 대답을 못하고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얘네들의 집에는 도마뱀이 없는 걸까.


“그걸 잡아보고 싶어?”

“근데 도마뱀을 잡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잡기 쉽지 않을걸… 꼬리 끊고 도망가잖아.”

“그러니까 꼬리랑 같이 잡는 법은 없을까?” 간단한 질문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글쎄… 도마뱀을 어떻게 잡을까?” 수수께끼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난 어릴 때 많이 잡고 놀았는데?” 한 친구가 목소릴 냈다. “계란 껍데기 같은 거를 벽에 붙여 두면 도마뱀이 그 속으로 들어갈 거야. 한번 해봐. 계란을 반으로 갈라서 조금 말렸다가 모서리 같은 곳에 붙이면 돼!”

“아! 정말 고마워, 그런데 산채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그렇지”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 생각에 얘는 지금 도마뱀 박멸법을 알려 달라는 거 같아.” 누군가 입을 다시 뗐을 때 친구들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몇은 믿을 수 없단 눈을 하고 있었다.

“하하, 도마뱀은 죽일 필요 없어. 걱정 마, 소현. 너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문질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어린아이에게 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도 한 마리 있잖아. 그냥 저렇게 있을 뿐이야.”그녀의 손 끝을 따라간 교실 벽에는 유리 비즈 같은 새까만 눈알로 눈치를 살피는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그랬다. 그냥, 있을 뿐이었다. 난 그런 애들을 죽일 방법을 묻고 있었고. 그러나 역시 현지 생활의 문제는 현지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이들은 도마뱀 문제에 대한 전혀 다른 해법을 안겨주었다. 기겁하게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지내보니 오히려 도마뱀 덕을 봤다. 일단 여름철 악재인 모기에 물릴 일이 없었다. 부엌에선 날파리까지 처리하니, 아주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사람을 피하기 때문에 불편할 일도 없었다. 그리고 박멸법은 정말 없었다. 도마뱀의 존재 자체로 안녕하지 못했던 나는 파키스탄 생활 내내 도마뱀이 싫을 뿐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혐오래도 어쩔 수가 다고 할 즈음. 우리 집의 몰래온 세입자는 도마뱀만이 아니었는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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