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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Jul 25. 2019

전기 없이 사는 나라가 있다고?

DJ, put it back on

    2011년, 파키스탄의 유력 신문 일면에 한국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특종으로 다뤄진 내용은 한국의 전력 중단 사태. 남의 나라에서 전기 나간 게 뉴스거리가 될 리가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책임장관이 문책을 받고 전격 해임되었다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하루에 몇 시간밖에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파키스탄에서는 대서특필 될만한 소식이었다. 코리아에선 장관씩이나 옷을 벗는가, 파키스탄의 언론은 되묻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정전은 일상인데 말이다.


    정말로 하루의 대부분을 전기 없이 사는 국가가 있다. 기술 발전이니 21세기니 해도 의미 없다. 없으면 쓰지 못한다. 전기가 없으면 정전이 나는 게 당연지사. 그것도 고작 30분 갖고 저 동방 국가는 웬 유난이냔 말이냐, 생각하다가 파키스탄 언론은 비로소 자신들의 처지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그런 경종을 우리나라가 울렸다. 하여 그들은 조금 놀란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파키스탄의 전력부 장관과 한국의 담당을 비교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후 5시. 집안 곳곳에서 가전제품들의 전원 켜지는 소리가 합창한다. 띠리리. 띠리리. 우리 구역은 대략 17시에 일정된 전기를 공급받는다. 5시쯤 전기가 들어오면, 두 시간은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빨리 밥을 안치면 어둠 속에서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밥을 안치면 빨래를 돌려야 한다. 간헐적으로 들어와서 한 시간도 지속되지 않는 전기로 빨래를 돌리는 도박을 해볼 텐가. 세탁기 앞에 앉아 전기가 세탁 과정을 마지막까지 지탱해 줄 것을 손 모아 기도하다가, 같은 손으로 손빨래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 많다.


    5시만큼 바쁘면서도 마음이 편한 시간이 없다. 보물 같은 두 시간이다. 핸드폰도 충전해야 되고, 얼른 와이파이에 연결해 전기 없는 시간을 위로할 예능 프로그램도 다운 받아 놓아야 한다. 전기가 들어오면 집안이 분주해지는 이유다. 현대문명에서 산다는 건 분주함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철학적인가. 일단 5시엔 전기가 있어서 행복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전기 때문에 새 삼성 냉장고가 몇 달만에 고장 나버렸다. 근데 현지에서 오래 산 분에게 들으니 한국 가전제품은 기능이 너무 정교해서 그렇단다. 이름 없는 조악한 현지 냉장고를 들이니 신기하게도 고장이 없다. 작동이 단순하여 코드를 꼽으면 켜지고 코드를 뽑으면 꺼진다. 음식을 가쪽 벽 가까이에 두면 냉동이 되고, 중앙에 두면 냉장이 된다. 이런 작은 고충도 모두 견뎌냈거늘, 50도를 웃도는 날씨에 에어컨을 못 켠다는 것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은 옥상의 물탱크였는데, 검은색이라 종일 태양열로 덥혀진다. 날이 더울수록 샤워물도 뜨끈한 이열치열.


    그럭저럭 5시에 의지하며 살다가 본격 여름이 되자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아빠가 전기발전기를 사 왔다. 그것은 노란색이었고, 김치 냉장고 정도의 크기였고, 검은 고무바퀴가 네 개 달려있었다. 대문 앞에 두기로 했다. 옆으로 난 뚜껑을 열고 기름을 넣어준다. 꿀럭꿀럭 기름이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주유소 냄새가 집안에 흐른다. 스위치를 켠다. 그러면 요란한 엔진 소리가 시작되고, 들들 대는 진동이 발밑에 느껴지고, 혹시 터지는 게 아닌가 싶어 한 발작 뒤로 물러날 때, 자욱한 연기가 위로 치솟으면서 전기가… 전기가 들어온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웬만큼 산다는 집들은 전부 가정용 전기 발전기를 두고 산다. 덕분에 거리가 무척 시끄럽다. 그래도 하루에 다섯 번 울리는 아잔 소리(기도소리)에는 묻히는 편. 쇼핑몰이나 학교, 공공기관 같이 전력소비가 많은 시설은 제너레이터의 크기가 비례한다. 공사할 때부터 아예 제너레이터를 세우기 위한 땅을 따로 두는 편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단독주택 세 채 크기의 전기 발전소가 있었다.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빠가 집에 초대한 어느 친구가 등산을 하다가 우연찮게 아주 높은 관제탑을 발견했다. 3층 이상의 빌딩이 잘 없는 이슬라마바드에서 관제탑이란 범상하지 않은 일. 하여 들어가 보았다고 했다. 이슬라마바드는 계획도시라서 도로들이 90도 격자로 놓아져 있는데, 큰 도로들을 중심으로 나뉜 각 사각 구역을 ‘섹터(sector)’라고 부른다. A1, A2…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는다. 엑셀 파일처럼. 그 관제탑에 올라가면, 네모들을 붙여놓은 이슬라마바드의 모습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도시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자리. 거기에 사람이 한 명 앉아 있다. 디제잉 보드처럼 생긴 기구를 앞에 두고. 버튼마다 각 섹터의 이름이 붙었는데, 스케줄에 맞춰서 버튼을 눌러주면, 해당 섹터에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이 사나이의 디제잉대로 도시 전체가 명암을 오간다고 했다. 한구석에서 졌다가 다른 쪽에서 피는 전깃불, 환해지는 하나의 네모가, 그리고 그 옆에 전기가 끊겨 암흑으로 빠져버린 네모가 보인다고 했다. 사나이의 눈 앞에는 오늘 총 전기 사용량이 미터기로 표시되는데, 그걸 봐가면서 오늘 일용할 전기를 섹터들 사이에 최대한 균형 있게 분배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여름에는 특히 짧게 씩 켜주는 식으로. 세상엔 별 직업이 다 있다. 산 위에 앉아 인간에게 전기를 허락한다니. 21세기 프로메테우스다.


    한국을 부러워한 파키스탄 언론이 그랬다. 온 도시에 돌아가는 제너레이터를 수입하는 비용과 그걸 돌리기 위해 기름을 살 값이면 중앙 발전소를 지어 모든 집에 전기를 충분히 공급하고도 남는다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집에만 전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주 시끄러운 소리와 역한 냄새를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왜 그럴까. 파키스탄은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다. 일 년에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지원금도 어마어마하다는데 전부 엉뚱하게 샌다. 하다 하다 국민들은 전기까지 자급자족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일자리 한 개 창출한 비용으론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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