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머무르기 2
2019년 5월,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게 무슨 우연인지, 옆자리에 한국인이 탔다. 저번 열차에서도 한국인 여행객 세 명을 만났지만, 멀리 떨어진 칸에 타고 있어서 정차역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게 전부였다.
옆자리에 앉은 나웅씨는 올해 2월에 대학을 졸업한 뒤, 세계여행 중이었다. 방식이 조금 독특했는데, 한 번에 몇 개월씩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이 주 정도 여행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식이었다. 올해 목표는 ‘한 달에 한 번 해외로 나가는 것’이고, 다음 달에는 일본에 간다고 했다. 세계일주는 큰 배낭을 메고 몇 달간 떠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부서진 순간이었다.
나웅씨는 대부분의 숙소를 당일에 예약했다. 계획형인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언젠가 한 번쯤 이런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편이라 여행 전에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미리 그려둔 여행의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웅씨가 부러웠다. 진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는 나보다 네 살 많았는데, 4년 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가장 부러웠던 건 나웅씨가 어제 탔던 횡단열차였다. 미대를 졸업한 그는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여행 중이었는데, 이게 아주 훌륭한 ‘인싸 스킬’이었다. 저번 열차에서는 옆자리에 앉은 러시아 군인의 얼굴을 그려주었고, 순식간에 긴 줄이 늘어섰다고 한다. 그중 한 명과는 친구가 되어 다음에 일본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내가 꿈꾸던 횡단열차 여행을 그가 하고 있었다니. 우리보다 하루 늦게 떠난 열차가 그런 곳이었다니! 질투 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나웅씨는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 반가웠는지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세 시간이 넘어가자 집중력이 바닥났다. 결국 나는 그의 이야기가 잠시 끊긴 틈을 타 슬쩍 도망가 낮잠을 청했다.
초초야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