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머무르기 3
2019년 5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열차에서의 하루는 단순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자고 일어나 이불을 정리한다. 한참 동안 열차 밖 풍경을 바라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낮잠을 잔다. 다시 잠에서 깨면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거나 일기를 쓴다. 그마저도 심심하면 앞자리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부부싸움을 구경한다.
열차가 잠시 멈추면 바깥바람을 쐬러 나간다. 정차 시간이 짧으면 플랫폼에만 머무르는데, 공기 절반이 담배 연기다. (이럴 바엔 내가 피우는 게 나을 듯.) 정차 시간이 길 때는 신난 강아지처럼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내일이면 횡단열차의 종착지,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떡진 머리를 보아하니, 시간이 제법 흐른 모양이다. 빨리 도착해 씻고 싶으면서도, 막상 내리려니 아쉽다. 먹고, 자고, 멍 때리는 데 익숙해졌는데,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지난 여행에서는 출발 전부터 일정을 짜고, 도착하면 계획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숙소에 돌아오면, 미션을 끝낸 뿌듯함도 잠시, 곧 내일 걱정으로 편치 않았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가끔은 지치기도 했다. 작년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정말 여행을 다녀온 걸까?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게 맞을까?”
하지만 횡단열차에서는 뭘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렇게 마음 놓고 쉰 건, 아마 십대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봤던 순간, 기지개를 켜며 들이마신 맑은 공기.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초초야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