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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30. 2022

망한 빙수가게

빙수 2

 프랜차이즈 빙수가게를 그만두고 열심히 기말고사를 준비했다. 정신없이 6월 한 달을 보내니 곧 여름방학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었다. 이렇게 길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알바를 구했다.


 이번에도 알바몬 어플로 이곳저곳에 지원했다. 이력서를 넣은 다음날 개인 빙수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막 시작하는 빙수가게여서 그런지 프랜차이즈 빙수가게에서 일한 경력을 매우 좋게 보셨다. 면접을 보고 난 다음날 바로 합격 연락이 왔고, 나는 사장님과 함께 빙수가게의 가오픈을 준비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나 혼자였고, 사장님을 도와주는 여자 친구를 제외하고는 사장님도 혼자 일했다. 사장님의 고군분투 빙수 카페 창업 기를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이번 글은 빙수가게가 왜 망했는지에 대한 분석글이 될 것 같다. 앞으로 편의상 내가 일했던 빙수가게를 '빙빙'(가칭)이라고 칭하겠다. 



카페 메뉴들


 우리 가게의 빙수는 '설빙'의 눈꽃빙수와는 달리 그 당시 꽤 유행했던 '호미빙'에 가까웠다. 대만 빙수 스타일인데 얼음을 대패로 간다고 해서 대패 빙수라고도 불렸다. 2015년 여름은 설빙과 호미빙이 용호상박으로 한국 디저트 시장을 장악했던 시절이었다. 아쉽게도 2022년 현재 '설빙'은 건재하고 '호미빙'은 사라졌다. 눈꽃이 대패를 이긴 것이다. 

 

 우리 '빙빙'의 시그니처 메뉴는 생망고빙수였다. 생망고빙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생애플망고 하나를 썰어 넣어서 데코 했다. 애플망고의 퀄리티도 좋았데도 가격이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장님의 지인이 대만 분이셔서 좋은 가격에 대만 애플망고를 직수입해 왔던 것이다. 


 애플망고를 예쁘게 썰어서 빙수 위에 데코 하는 게 어려웠지만, 연습하다 보니 나름 그럴싸했다. 생망고 빙수 외에는 옛날 팥빙수와 인절미 빙수 정도가 있었다.


 망고 스무디나 아메리카노 같은 음료도 팔았다. 우리 '빙빙'의 망고 스무디에는 시럽 대신 냉동 망고가 들어간 리얼 망고 스무디였다. 때문에 마진이 별로 안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장님은 시럽을 거의 쓰지 않는 것에 자부심 있었는데, 시럽을 좀 더 넣고 냉동 망고를 좀 더 줄였으면 맛있었을 것 같다.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오지 않는 손님들


 나는 평일 오픈이라서 출근하자마자 재료를 손질하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초반에는 오픈 효과로 사장님 지인들이나 호기심이 있는 아파트 주민분들의 방문으로 가게가 붐볐다. 하지만 1주일 만에 오픈 효과는 사라졌고, 결국엔 내 최저시급보다 음료와 빙수가 안 팔렸다. 


 우리 빙수가게는 대단지 아파트 1층 상가에 있었다. 대로변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지하철역 근처가 아니라서 매장에 들어올만한 수요층이 별로 없었다.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손님은 오지 않았고 사장님의 초조함은 커져갔다. 1그릇만 팔던 날도 있었다. 사장님은 나중에 근처 가게에 있는 꼬마김밥을 떼어다가 쇼케이스에 두고 팔았다. 이 동네에서 핫한 김밥인 듯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사장님도 좋아해서 몇백 원의 마진을 남기고 팔았다. 나야 김밥이 맛있어서 점심으로 잘 먹었지만 '카페에서 김밥이라니!' 사장님이 콘셉트를 잃어가는 게 점점 눈에 보였다.


 당시에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꿀알바라는 생각에 사장님이 하란대로만 했다. 지금 다시 그 알바를 했다면 어떻게든 사장님과 함께 가게를 살려보려고 같이 탐구를 해봤을 거 같다. 하지만 20살의 나에게 사업이란 완전한 남의 이야기였고, 나는 주어진 노동시간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려고 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는 4주 뒤에 잘렸다. 해고 통보를 할 때도 사장님은 정중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처음 만난 진짜 어른이었다. 사장님은 카페를 잠깐 닫고 다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다행히 사장님은 빙수가게 말고도 본업이 따로 있어서 내 임금은 문제없이 입금되었다. 

 

 나는 3달 뒤에 '빙빙'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서 찾아갔지만, 가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사장님이 어딘가에서 이때를 경험 삼아 대박 나셨기 진심으로 바란다.



망한 카페 분석


 그만두고 나서도 '빙빙'이 망한 이유에 대해 가끔씩 생각해봤다. 빙수가게도 카페의 일종이었는데 명확한 콘셉트가 없었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사장님이 처음에 카페를 아파트 상가로 잡은 이유는 배달전문 빙수 카페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매장 손님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렴한 임대료의 아파트 상가를 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내에 테이블 몇 개 정도 놔볼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홀 손님의 요구에 점점 포커스가 맞춰졌고 배달에는 포커스를 잃은 상황이었다.


 내가 그만둘 때까지 배달원을 뽑거나 사장님이 직접 배달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지금만큼 배달업체가 활발하지도 않고, 디저트를 배달해 먹는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땐 나보다는 배달원을 먼저 구했거나 비싸더라도 배달업체를 이용해 봤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도 배달 대신 카페에 테이블을 둔 것에서 시작한다. 사장님께서는 빙수 및 음료의 맛과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인 내가 먹어도 정말 맛있는 빙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페는 식당과 달리 맛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소비자가 카페에 가는 이유는 음료보다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1층 상가 2평 남짓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빙빙'도 비싼 빙수 가격을 주고 한참 수다를 떨기에 너무 좁고, 직원 눈치가 보이는 공간이었다. '빙빙'은 애초에 배달 빙수로 콘셉트를 잡았어서 식기나 인테리어에 투자를 안 했었다. 그래서 급조한 빈티지 감성으로 콘셉트를 잡았는데 결국은 싼 티 나는 감성으로 전락해버렸다. 


 사실 사장님도 이러한 문제점을 다 알고 계셨을 거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말하기도 쉽지만, 본인의 일은 이성적인 관점으로 보는 게 어렵다. 나도 언젠가 사업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20살 '빙빙'에서의 경험이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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