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영어유치원이 있다. 아마 이 동네에 살지 않아도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영어유치원은 영유아 아이들에게 서울대 입학과도 같다. 그래서 마치 서울대 학생들이 서울대학교라고 써진 과잠바를 입고 가면 모두들 부러운 시선을 보내듯, 이 유치원의 가방을 메고 지나가면 그런 시선을 받기도 한다.
이 유치원은 명성만큼이나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일단 5세 입학부터 ‘레벨테스트’에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레벨테스트의 기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이곳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을 길게는 1년 짧게는 3,4개월을 준비시킨다.
4세 레벨테스트 수준
-선에 맞춰 A-Z까지 소문자 대문자 쓰기
-cvc 단어 읽고 쓰기(자음 단모음 자음 단어)
-영어 문장으로 의사소통
-숫자 1-20 읽고 쓰기
-파닉스
우리 둘째는 같은 4살로 평범한 교육환경에서 자라고 있으며, 인지발달이 보통 수준인데 이 중 결코 하나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또 이 레벨테스트를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어유치원에서 주관하는 영재 테스트에 통과해야만, 레벨테스트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 (상위 5프로 이내에 들어야 레벨테스트를 볼 수 있다.)
이 테스트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지만, 오늘은 넘어가고자 한다.
다시 말해,
영재 테스트 통과(5프로 이내) -> 레벨테스트 통과 -> 5세 영어유치원 입학!
5살 아이가 영어를 배우러 영어유치원에 들어가는데, 레벨테스트를 봐야 하고,
레벨테스트를 보는데 영재 테스트를 봐야 한다.
어느 것 하나 ‘기이’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기이한 구조 속에서 기이한 사교육들이 줄지어 생긴다. 영재 테스트 준비 과외, 레벨테스트 대비 학원과 과외, 영어유치원 프렙 놀이학교 등.
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1. 4세(36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에게 영재 테스트는 의미가 있는가?
2. 5세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는데 레벨테스트를 보는 것은 타당한가?
3. 영어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3,4살 아이들을 과외까지 시키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
그러나 동네의 엄마들의 사교육 열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덩달아 레벨테스트는 매해 어려워지고 있다. 그 속에서 가장 피해받는 이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하루에 두세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알파벳을 쓰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른을 대신하여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해야 이 기괴한 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