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도 치킨 닭다리를 좋아한다고 외쳐라

by 둥아리


치킨을 시켰다. 왠지 엄마는 닭다리를 안 먹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엄마도 닭다리를 좋아한다. 왜 엄마는 닭다리를 안 먹을 것 같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의 이미지가 그렇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래서 정작 본인은 돌 볼 여력이 부족한 사람, 이런 사람이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엄마였다. 엄마는 마치 닭다리를 양보하듯, 참 쉽게도 본인의 행복을 가족을 위해 양보해 왔다.


나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행복하지 않은 엄마 밑에서, 결코 행복한 아이가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다고 단정 짓지 않는 이유는, 엄마는 행복하지만 아이는 행복하지 않은 경우를 꽤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은 내 아이가 불행하게 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잘 알아야 한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주변을 챙기느라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고 산다. 하다못해 식사를 준비할 때도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은 거의 뒷전이고, 남편이 혹은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위주로 차린다. 나의 엄마도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아무거나 괜찮아. 네가 먹고 싶은 것 먹자.”였다.


나는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스스로 정한 일종의 원칙 같은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하루에 한 끼를 챙겨 먹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이가 남긴 것을 먹어야 한다면 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소중한 만큼 엄마도 소중하므로, 나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다.


행복한 엄마들은 아이들의 행복만큼 본인의 행복도 중요하다. 그래서 늘 행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다. 엄마가 이렇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니, 주변에서도 자연스레 엄마를 소중히 여긴다. 엄마는 더 이상 희생과 양보의 아이콘이 아니다.


나는 육아를 시작한 이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예쁜 곳에 가서 식사를 한다. 나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수다를 떨고 밥을 먹는 것이 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둘인 엄마가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노력과 의지였다. 내가 행복해지겠다는 의지. 분명 아이 둘을 맡기고 나가는 일은 너무나 힘들지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노력임에 틀림없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자. 엄마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 단지 엄마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일주일에 하루, 아니 한 달에 하루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반찬 만들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휴식이 아닌,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친구를 만나서 예쁜 곳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자. 혹은 나를 위한 예쁜 옷을 사거나 날 좋은 날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한 달에 하루 몇 시간 정도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써도 괜찮다.


엄마라서 당연히 희생하고 포기하지 말자. 엄마도 스스로 행복할 방법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불행하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글엔 슬픔이 없어 안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