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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집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을까?

학부모가 학군지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하여

by 둥아리


돈 많은 집 아이들은 왠지 싸가지가 없을 것 같다. 나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오기 전에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마 TV에서 보여주는 돈 많은 집 자식들의 왜곡된 이미지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 보니 오히려 돈 많은 집 아이들은 순하다. 심지어 예의까지 바르다(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이지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압구정에서 만난 아이들, 내가 가르쳤던 대치동 근방의 학교의 아이들이 실제로 그랬다.

이 동네 아이들은 왜 순할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왜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순할까?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아마 많은 엄마들이 강남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바로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 근방의 엄마들은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다. 간혹 맞벌이인 경우에도 대부분 전담 시터를 고용해서 아이가 성인의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한다.(그도 아니라면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를 전담으로 돌봐주는 성인(주 양육자)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아이들은 꽤 오랜 기간, 많은 순간, 성인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만 봐도,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옛말에 아이들은 손톱 끝만 봐도 얼마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성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니, 인성 교육이나 교우 관계, 학습 습관과 같이 중요한 부분은 성인의 관심 정도에 따라 더욱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동네의 아이들은 오히려 과도할 정도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다. 일례로 나는 학군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5학년까지 콜라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아이들은 사소하게는 먹고 마시는 것부터 친구를 사귀고, 학원을 가고, 숙제를 하는 것까지 모두 부모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설사 탈선을 하고 싶어도 좀처럼 탈선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성실하게 학교를 다닌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선배 교사들은, 내가 근무했던 강남 학군지의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고 ‘그림 같다’고 말했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아이에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부모의 사정일 뿐, 아이들은 부모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는지에 따라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가 된 선생님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휴직계획을 세운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그 순간에 아이의 옆에 있어주는 것의 이점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순한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여유에서 비롯된다. “잘 사는 사람들은 구김살이 없다.”라는 말처럼 이곳의 아이들은 순하고 순수하다. 아이들은 언제나 모든 것이 충분하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갖기 위해 힘들여 싸울 필요가 없고 남의 것을 욕심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주변에 나눠 주는 경험이 더 흔하다. 또한 혹여나 남들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겨도, 여유가 있으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배려심도 있다.


실제로 동네 놀이터에 나가보면 아이들은 서로 이것저것 나눠주기 바쁘다. 하다못해 과자를 사도 여러 개를 사서 주변의 친구를 나눠 준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아이의 손에는 엄마가 챙겨준 장난감 선물이나 작은 간식이라도 들려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돈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기 쉽다.” 실제로 경제적인 여유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절하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준다.

순한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친절한 어른이 된다. 그래서 사실 사람들이 갖는 고정관념과 달리, 이 동네의 어른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오히려 오래전 이슈화된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건’은 극히 드문 사례이다. 나는 이 동네에서 5년 가까이 살면서 경비원이나 택배 기사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세상의 모든 직업을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청담동 지역에서 6년째 일하는 택배 기사를 인터뷰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택배 기사는 오히려 이 지역의 사람들이 친절해서 누구나 선호하는 지역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과 경제적인 여유 덕에 이 동네의 아이들은 대부분 순한 기질을 갖는다. 그래서 학교 폭력이나 청소년 비행도 드물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이곳, 강남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업 분위기가 좋다거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등의 것들은 나중의 문제이다.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동네의 강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요즘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 ‘학군’을 중요시하는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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