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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되었다

by 둥아리
호텔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필리핀 세부의 길거리
세부의 호텔은 아예 다른 세상 같다.

사람에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갖게 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이를 귀속지위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성별, 부모, 가문, 국적 등이 있다. 성취지위처럼 개인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기 마련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함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나는 당연히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이들과 함께 세부여행을 다녀오고서, 태어나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머문 호텔은, 세부에서 가장 좋다고 소문난 5성급 호텔이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펼쳐진 세부의 환경은, 내가 머물던 숙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세부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에서 고작 5분 남짓한 거리에는,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몇몇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인 외관을 보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집 안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당시 한국이라면 학교 수업이 시작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늘 그랬다는 듯, 길거리에 앉아 물건을 팔고 있기도 했다.


사실 결혼 전에도 나는 세부뿐만 아니라 라오스나 태국 등 다양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했었다. 특히 라오스의 경우에는 세부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10년 전이지만 라오스의 수도에서도 정전이나 단수가 흔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때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을 보거나 경험하여도 그 순간 불편하고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혔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맞닥뜨린 타국의 열악한 환경은 나에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참 이기적이게도 세부의 아이들을 보며, 내 품에 안긴 아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음에 안도했다. 우리 아이를 어떤 유치원에 보낼지와 같은 사치스러운 고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 아이가 세부에서 태어나, 세부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에게 지금처럼 크고 넓은 꿈을 품으라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 당연하게 누리고, 또 이 당연한 것들을 우리 아이들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깨끗한 물, 깨끗한 집, 평등한 수준 높은 교육, 안전한 치안 등 나열하기가 버겁다.


나는 엄마가 되고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세부에서 택시를 타고 지나가며 만난 모든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날들이 지금보다 행복하길, 더 큰 희망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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