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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시상식을 개최합니다.

by 둥아리


우리 시댁에는 아주 좋은 가족문화가 있다. 1년의 마지막 날, 가족이 다 같이 모여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시댁의 식구가 되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온 이러한 문화는 꽤나 진지하고 엄격하게 진행된다.


1. 한 해의 중요한 일들을 정리하고

2. 작년에 각자가 목표한 계획을 세웠는지 확인하고

3. 작년에 서로에게 조언한 내용은 실천했는지 확인한다


2022년의 마지막 날에도 시댁에서의 가족행사는 진행되었다. 서로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딱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예컨대 남편은 원하는 직장으로 이직을 했고, 고모부는 계획했던 대로 논문 5편을 작성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나는 1년 내내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많은 힘을 썼다.


4살 5살 아이를 5살 6살로 길러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실 육아는 모든 부모들이 하고 있으며,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인 것도 맞다. 그러나 육아가 다른 일과 다른 점은, 사회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과급도 주고 회사 내에서 인정도 받지만, 육아는 그 빛나는 성과를 오직 나만 아는 고독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막연히 육아어워즈, 육아 시상식, 육아성과급 같은 육아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무엇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육아시상식이 있다면 나도 적어도 후보 안에는 들지 않으려나 싶은 잠깐의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본다.


많은 육아전문가들이 나와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저절로 자라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모르게 흘린 부모의 수많은 피, 땀, 눈물이 있다. 밥 먹는 것 하나, 화장실 가는 것 하나, 모든 것을 가리키고 알려주고 고쳐주어야, 아이는 겨우 뒤처지지 않고 제대로 한 살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2022 육아 업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자차로 매일 아이들을 등하원 시켰다. 나는 운전면허 도로주행에서 5번 떨어진 사람이다. 즉 그만큼 운전을 못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각기 다른 어린이집, 그것도 셔틀이 지원되지 않는 곳으로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집에서 반대 방향인 두 아이들의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고 나면 1시간이 지나있었다. 이렇게 1년을 매일 같이 아이들을 등하원 시킨 나를 칭찬한다.


2. 아이들을 3시 30분 이전에 하원시켰다. 아이들의 하원시간과 관련된 내용은 앞선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어린이집에 오래도록 남아 겪었던 속상함이나 외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3시에서 3시 30분 사이에 두 아이들을 모두 하원시켰다. 내 기억에 1년 동안 2일인가를 제외하고 정말이지 매일 그랬던 것 같다. 가끔은 늦게까지 늘어지게 쉬고 싶기도 하고, 친구들과 오래도록 놀고 싶기도 했지만,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아이들을 일찍 하원시킨 나를 칭찬한다.


3. 첫째가 한글과 파닉스를 독학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한글과 영어를 뗄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나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 무엇보다 많은 책을 읽어주어야 했고(물론 아이가 읽어달라고 했지만), 실생활에서 글자와 관련된 것들을 알려주고 접하게 도와주어야 했다. 자동차 번호판, 가게의 간판, 레스토랑 메뉴판 등. 단 한 번도 한글 책이나 알파벳 학습지를 풀게 하거나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글과 파닉스를 독학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운 나를 칭찬한다.


4. 매일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마른 편이라,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아침 식사 준비는 복직을 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작년까지는 휴직 중이라 가능했다. 거창하거나 화려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한식 위주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려고 노력했다.(보통은 만든 국, 밑반찬 2-3개, 백김치, 김, 좋아하는 생선을 위주로 차렸다.) 아이들은 비록 가끔씩 너무 힘들 때 주는 시리얼, 빵, 과일 등을 훨씬 더 좋아했지만, 못하는 요리 솜씨에도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매일 같이 챙긴 나를 칭찬한다.


5. 아이들의 옷을 매일 다려주었다. 같은 옷도 빳빳하게 다림질된 옷과 마구 구겨져 있는 옷은 입었을 때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비싼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이 아이들의 옷을 다려서 입혔다. 가끔 그러느라 스팀다리미에 디인 적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좋았다. 엄마는 무슨 아이들 운동복까지 다리냐며 타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매일 같이 잘 다려진 옷을 입힌 나를 칭찬한다.


6.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내용은 어쩌면 나의 대학원 생활에 부족함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학원 박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둘 중 한 가지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선택한 것은 육아였다. 비록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더 많이 눈에 담고 더 많이 사랑해 준 나를 칭찬한다.



p.s 혹시 이 글을 보신 독자분들 중에서도,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육아 업적>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아이를 위해서 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요! 제가 마구 칭찬과 응원을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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