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 밖에서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 말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아줌마가 된 나는, 잘못이나 실수를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좋게 말하면 아이를 낳고 용감해졌다.
아마 이번에도 분명 아가씨 시절의 나였다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세부에서 가장 좋다는 5성급 호텔의 식당이었다. 파인애플 주스를 시켰는데 정말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정확히는 파인애플 향이 나는 물 맛이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던 나는 먹어볼 것을 권유하고는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다시 돌아온 파인애플 주스는 여전히 물 맛이었다.
짜증과 화가 잔뜩 난 채로, 물놀이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물 맛 주스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말한다.
이곳에서는 그게 맛있는 거일 수 있어. 엄마.
아이는 화가 난 나를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아이의 꽤나 진지한 말에, 이깟 만 원짜리 주스가 대수인가 싶다. 만 원짜리에 내 기분을 망쳐버리기엔,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아이의 말이 너무 값졌다. 그렇게 만 원짜리 파인애플 주스는 누구도 먹지 않고 그대로 버려졌다.
번외로 아이들과 세부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에 머물며, 호텔의 서비스에 불만족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나라의 5성급이라는 호텔의 일처리가 어찌나 동네 구멍가게 같은지. 아마도 아이들과 세부에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