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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May 30. 2023

놀이터에서 딸을 잃어버렸다

아이 둘과 오후선생님과 함께 놀이터에 나갔다. 그날따라 놀이터에는 아이들도 엄마아빠도 바글바글했다.


꽤 큰 규모의 놀이터라, 선생님과 나는 각자 흩어져 아이 둘을 보았다. 나는 킥보드를 타는 첫째를, 선생님은 모래놀이를 하는 둘째를.


놀이터를 너무 늦게 나온 탓에, 선생님이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아이 둘은 당연히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먼저 퇴근하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둘째에게 인사를 하고는 놀이터를 나가셨다고.


그렇게 선생님이 인사를 하고 떠나고, 나는 익숙한 놀이터에, 그날 따라 많은 엄마아빠들 속에서, 왠지 모를 “불필요한 안심”을 하며, 모래놀이하고 있는 둘째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나와도 몇 마디 주고받은 가족들과 함께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첫째를 따라 놀이터 한 바퀴를 돌고 왔다.


놀이터를 한 바퀴 도는데 한 1-2분이나 흘렀을까, 다시 돌아간 모래놀이터에는 둘째가 없었다. 모래놀이터를 나가 놀이터 다른 곳에서 놀고 있나 하는 생각에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모래놀이터에 앉아있던, 우리 아이의 장난감까지 빌려서 놀고 있던, 아이와 엄마에게 물었다.


“노란색 머리핀한 아이 어디 갔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어? 아까까지 같이 놀고 있었는데, 어디 갔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생님께도 전화를 했지만, 둘째와 함께 있지 않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찾았다. 그리고 아이를 찾는 1-2분의 순간에, 나는 내 생애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옥에 간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리라.

아이를 찾으며 놀이터를 돌아보는데, 정겨워 보이던 수많은 엄마아빠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그러다 저 멀리 놀이터 문 앞에, 노란색 머리핀을 한 자그마한 아이가 울먹이며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 아이를 안고서야,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알고 보니 모래놀이를 한참 하다, 함께 있던 선생님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 따라서 놀이터를 나갔다고 했다. 급하게 돌아온 선생님과 나는 아이들을 한 명씩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가 있는 공간에 어른이나 아이들이 많다고 안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오히려 그 많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나의 안심이 얼마나 섣부른 안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범죄는 동네 이웃처럼 익숙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직접 말을 하고 부탁하지 않는 한, 다른 부모는 남의 아이를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모래놀이터 안에서 딸의 장난감을 빌려주고 나와 내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던 부모님에게 막연한 의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 부모님과 아이는 내 딸아이가 떠난 것조차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놀이터에 수많은 아이가 있어도, 언제나 내 시선은 내 아이에게만 가있다. 바로 옆에 있거나 말을 주고받았다 해도, 그 순간뿐인 것이다.


혼자서도 종종 아이 둘과 놀이터에 나가곤 했다. 5살, 6살의 어린 연년생 남매라 버거울 때가 많아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혼자 둘을 데리고 나가기 쉽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사히 딸을 다시 만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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