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두 번째 이가 얼마 전부터 흔들린다. 첫 이는 집에서 뽑았지만, 어디선가 이를 집에서 뽑으면 삐뚤게 난다는 말이 기억이 나, 아이와 부랴부랴 내가 다니던 치과에 갔다.
평소엔 어린이 치과를 다니는데, 예약도 힘들고 비용이 너무 비싼 탓에 기존에 내가 다니던 곳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내가 평소에 이곳을 다녔던 이유는 소위 과잉진료 없는 치과라고 소문난 치과이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이도 제법 흔들리는 터라, 후다닥 뽑고 올 셈이었다.
아이는 공룡인형도 없고, 어린이 만화도 나오지 않는 삭막한 어른들의 치과가 낯선지 두리번거리며 무섭다는 말을 1초에 한 번씩 내뱉었다. 그러다 나에게는 낯익은 치과 의사 선생님이 등장했다. 선생님은 아이의 이를 뽑으러 왔다는 말에, 아이의 이를 잠시 흔들어 보신다.
그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이는 안 뽑는 게 낫겠어요.
“앞으로 19번 더 이가 흔들리고 빠질 거예요. 그럴 때마다 치과에 오실 필요 없어요. 이가 조금 흔들릴 때마다 치과에 오면 이 어린아이에게 19번의 아픈 추억이 생기는 거예요. 그냥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두어도 괜찮아요. 그냥 아이가 혀로 흔들리는 이도 밀고 장난도 치다가 그냥 빠지도록 두세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정신을 차리고 “이가 많이 흔들리는데 두면 새로나는 이가 안 이쁘게 난다던데.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경우도 있지만, 정말 1년에 1-2건이에요. 혹시 아이가 이가 흔들리다 많이 불편해하거나 아파하면 다시 오셔도 좋아요.”
“지금도 뽑을 순 있지만,
그러면 이 아이 한바탕 울려야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러고 보니 이가 꽤 흔들렸지만, 아이가 아프다거나 불편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누워있는 아이에게 혹시 이가 흔들려서 아프거나 불편해?”라는 늦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이는 그제야 “아니. 아직 그렇게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아.”
아이를 키우면 온갖 종류의 병원을 참 자주 다니게 된다. 그럴 때마다 정말 다양한 의사 선생님을 마주한다. 권위적인 의사, 과잉진료하는 의사, 실력 없는 의사, 짜증 내는 의사, 친절한 의사, 공감해 주는 의사, 등등. 그중에서도 아이를 키우며 만나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최고의 의사는 단연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의사이지 싶다.
아마 이 치과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예쁜 이를 갖게 해 주겠다는 목적의식 하에, 아이를 데리고 적어고 19번 치과를 갔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19번의 긴장되고 힘든 이를 뽑는 순간을 마주해야 했겠지.
아이에게 이를 잘 뽑으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아이와 손을 잡고 치과에서 나오는데 아이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묻는다. “그래도 케이크는 사줄 거지?”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아이가 케이크를 먹으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도 안 뽑고 케이크도 먹네!” 그리고 아이를 보는 나도 싱글벙글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주었다는 안도에 엄마도 기분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