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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n 07. 2021

아이를 혼낸 뒤 문득 cctv를 돌려 보았다.

아이들은 많은 순간 부당한 이유로 혼난다.


오늘은 아침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았을 텐데,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 이유는 아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커피를 '우리 집에서 제일 비싼 전집'에 쏟아서였다. 왜 요즘 하지 말라는 행동만 하냐며 한참을 혼을 냈다. 아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화를 내고도 분이 안 풀려 아이랑 대화도 안 하고 책만 닦았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cctv를 봤다. cctv 속의 아이는 처음에는 자기 책상에서 놀고 싶었는지, 조심조심 내 커피를 치웠다. 그리고 한번 더 다른 곳에 옮기다가 커피를 부어버렸다. 내가 제3자가 되어 화면을 보니,


첫째, 아이의 책상에 커피가 담긴 컵을 놓은 내 잘못이 가장 컸다.

둘째, 아이는 내 생각처럼 처음부터 커피를 쏟으려던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놀기 위해 내 커피를 치우려던 것일 뿐.


아이는 내가 그렇게 화를 낼 때에도 억울하고 슬픈 표정만 지을 뿐 변명을 할 줄 몰랐고. 이후에 내가 화를 풀지 않아도 나에게 다가와 먼저 소꿉놀이를 하자고 했다.


문득 아기들은 얼마나 많은 순간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어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혼나고.(엄마가 기분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로) 또 그것의 부당함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 후에도 먼저 어른들을 아무렇지 않게 용서해주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아이들은 너무 쉽게 어른들을 용서한다 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또 너무 쉽게 잘못을 저지르고 반복한다.


오늘 나는 몇 번이나 나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물론 아이는 늘 그렇듯 나를 용서해주었다. 그리고 이 날은 cctv를 단 이후로 가장 큰 소득을 얻은 날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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