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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n 23. 2021

장염에 걸린 연년생 엄마가 화장실에서  드는 생각은


며칠 전 태어나 가장 심한 장염에 걸렸었다.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위로 아래로 동시에 쏟아내는 경험은. 평소에도 잘 체하고 배탈도 나지만, 이렇게 심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화장실에서 약 30분을 머물며 거의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엄마가 집에 와있어서 다행이다. 내일 아침밥은 엄마가 아이들 챙겨주겠지?'였다. 마침 이 날은 친정엄마가 이틀째 우리 집에 머물고 있었던 날이었다. 죽도록 아픈 와중에 아이들 아침밥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당시에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내가 장염에 걸린 이유가 뷔페 음식이 상해 서면 어쩌지였다. 내가 아픈 건 아픈 거고, 뷔페 음식이 내 장염의 원인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됐다. 아이들도 함께 먹은 뷔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토록 죽도록 아픈데 아이들이 이 고통을 느낀다고 상상하니 더 죽을 맛이었다. 화장실에서 아픈 와중에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나 말고는 아직 아무도 아픈 사람이 없었다. 그제야 내가 아픈 것은 내 컨디션 탓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한결 마음이 편했다. 돌이켜보니 아이 둘과 뷔페에 가는 바람에 거의 서서 먹고 제대로 씹지 않고 먹었던 것 같았다.


다행히 이틀 정도 지나고 내 급성 장염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너무 고통스러웠던 그날에도 나는 엄마였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아픈 날이면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는, 내일이 되기 전에 얼른 나아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실제로 종종 내일이 되기 전에 낫기도 한다. 의지력이 정신을 지배한다.) 내일도 내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 둘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가 된 이후로 신기하게 잘 아프지도 않다.


'엄마는 아파도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예전부터 흔하게 듣던 말들이 현실에서 체감되어 다가올 때의 느낌이란. 내가 죽도록 아파도 자식의 아침밥이 걱정되는 것. 나는 아파도 괜찮으니 자식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큰 사랑을 조건 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부모)뿐일 것이다. 그리고 문득 나도 이런 사랑을 받으며 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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