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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l 09. 2021

영어유치원의 비극(영어가 뭐길래)


어유치원은 보통 학습식과 놀이식으로 나뉜다. 학습식은 공부가 위주며 읽기와 쓰기가 주 학습 내용이다. 반면 놀이식은 놀며 공부를 하며, 듣기와 말하기를 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공부도 놀이도 적당히 하는 절충식도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점점 놀이식 유치원이 사라져 간다. 그 이유인즉슨 아웃풋이 좋지 않아 학부모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일대에서는 놀이식으로 알려진 영어유치원에 6세 아이를 보낸 지인이 있었다. 3개월을 못 채우고 놀이학교로 옮겼다. 그 이유인즉슨, 아이가 매번 보는 영어 테스트에서 맨날 틀려만 오니 아이가 스트레스가 심했다. 심지어는 알파벳도 잘 모르는 아이에게 5 문장의 작문을 해오라고 숙제를 내주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 지인이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유치원에서 답변하길, 아이가 과외를 안 해서 따라갈 수 없다고. 이 학원에 다니며 과외를 안 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하더란다. 학원을 위한 과외라니. 심지어 유치원에서 직접 과외를 권유하다니, 실로 충격적이었다.


놀이식으로 알려진 이 일대의 영어유치원이 이 정도인데, 앞서 언급한 학습식으로 유명한 영어유치원은 어떨까.  그 학원을 내 지인이 보낸다. 이 일대에서는 모르는 엄마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어유치원이다. 그곳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가서도 힘들기로 유명하다. 예전에 언급했듯 들어가기 전에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보통의 5세는 합격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 3~4세부터 입학을 위한 과외를 해야 한다.


나는 그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아요?' 나는 내심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기대했다. 분명 안 힘들어하고 재밌어한다고 하겠지. 그런데 웬걸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힘들어하죠. 안 힘들 수가 있어요?'. 그랬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나마 합리적인 내 지인은 숙제를 반만 해서 보낸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직전까지 놀 시간이 거의 없다고. 그럼 숙제를 다해가는 5~7살 아이들은 놀 시간은커녕 잘 시간도 줄여가며 공부한다는 뜻이었다. 비극이었다.


그 지인과 함께 만났던 다른 언니에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물었다. '이 동네는 왜 이렇게까지 교육을 시키는 걸까요?' 그 언니는 망설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잘됐으면 좋겠어서? 성공하면 좋겠어서?'. 곰곰이 생각하니 그렇다. 그들도 나도 같은 부모였다. 걸어가는 길이 다를 뿐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는 마음은 같았다. 유치원에 돌아오자마자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데리고 울며 싸우며 자기 전까지 숙제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는 엄마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의 20년 뒤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 누려야 할 행복을 앗아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시키는 것. 요즘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이 가져온 결과이다. 


나는 영유아기에 누려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유아기를 제대로 보낸 아이들이 결국 이후에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길지는 않지만 30년이 넘는 세월을 살다 보니 사람에겐 그 시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있다. 시기를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누려야 할 것들을 포기시키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화창한 주말, 집 근처 한강공원에 아이들과 놀러 나갔다. 5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며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거의 울먹이고, 엄마는 이 숙제를 다해야 놀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화창한 날 햇빛이 반사한 강물이 반짝이는 한강 공원에서, 5살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말에도 모두 뛰어노는 한강에서 숙제를 하며, 미래의 행복을 위한 일이니 괜찮다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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