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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an 04. 2022

엄마가 아파트 급발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날은 오래전부터 잡아놓은 지인들과의 중요한 일정이 있던 날이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둘째는 돌보 미분에게 맡기고는,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웬만해서는 내가 일정이 있어 나갔을 때는 연락이 오지 않는 돌보미 분의 전화였다. 내가 전화를 받자, 둘째가 똥을 싸지 못해 너무 힘들어서 운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 그래도 삼일 째 똥을 싸지 못한 둘째 때문에 아침에도 함께 힘을 주고 나온 터였다. (당시는 좋다는 유산균도, 요구르트도, 과일도 아이의 변비를 해결하기엔 역부족하던 때였다.)


그리고 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시 잠깐 망설인 것이 무색하게 급히 택시를 잡으며 뛰쳐나갔다. 다행히도 마침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나가기 전 함께한 일행들에게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모두 누군가의 엄마였던 그들은 나의 행동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었다.


10분 만에 도착한 집에는 똥을 싸려다 처참히 실패한 아이가 힘 없이 너부러져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아이는 나에게 울며 다가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게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 갔다.


엄마는 늘 그렇듯 '위대하므로', 아이의 변비를 해결하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자세한 이야기는 더러울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아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고 우리는 모두 안심했다. 돌보 미분은 그제야 미안하다며 나에게 다시 약속 장소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택시를 타면 10분이면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안겨 보내지 않으려는 듯 칭얼거렸다.


똥을 싸려는 노력이 꽤나 힘들었는지 얼굴에는 땀과 더불어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보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흔들렸던 마음이 아이의 붙잡는 손길에 또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5분가량이 지났을 무렵, 난생처음 듣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졌다.





당시에 나는 정말이지 지진이 난 줄로만 알았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 알고 보니, 그 굉음의 정체는 아파트 출입문 바로 앞에 세워둔 자동차가 후진 급발진을 하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아파트 내부까지 들이닥쳤다고 했다. 한참 뒤 나가서 살펴본 아파트 1층은 처참했다.


다행히도 급발진을 하는 순간 아파트 1층에는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혹여나 그 순간 사람이 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듯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금 나가지 말라고 나를 나를 잡던 아이의 손길이 떠올랐다. 만약 그 순간 그냥 나갔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괜스레 나를 붙잡아주던 아이의 손이, 그 작은 손에 쉽사리 금방 주저앉은 내가, 감사하고도 벅찬 날이었다. 엄마라서 살아남은 것일까.


<가 이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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