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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May 31. 2022

친구에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애가 둘인데

부모의 책임감의 무게에 대하여


는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아이를 낳았다. 30살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당시에 내 친구들 중에 아이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결혼을 안 한 친구도 많았다.


남들이 안 해본 일을 먼저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그렇게 의도치 않게 애도 가장 먼저 낳아 벌써 4살 5살 두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34살, 이제야 결혼을 하고 자녀계획을 세우려는 주변의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항상 물어본다. 아이는 언제 몇 명이나 낳으면 좋을지. 나는 그러면 항상 대답한다. '아이를 꼭 낳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친구들은 애를 그렇게 예뻐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다시 되묻는다.


아이는 너무 예쁘다. 그래서 아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태어나서 느껴본 적 없는 행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이가 주는 행복이, 아이로 인해 겪는 힘듦을 결코 상쇄시키지 못한다. 그냥 아이로 인한 행복과 아이로 인해 겪는 힘듦은 별개다.


나는 육아가 힘들고 어렵다. 작가 소개에도 적어놨듯,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나 싶다. 내가 이렇게 육아에 부담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책임감이었다.



육아의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그저 누워서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갓난아기를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육아의 모든 과정에서 책임은 오롯이 부모에게 지워진다. 나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에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 특히나 유아기의 아이들은 결국 부모의 영향이 99프로 차지한다는 것을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금쪽같은 내새끼'만 보더라도 결국 아이의 문제는 99.99프로 부모에게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육아를 하는 모든 과정이 항상 고민의 연속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립다. 내 인생만 책임지고 내 인생만 고민하면 되던 홀가분하던 때가. (물론 내가 유독 아이를 키우는 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드시 옳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과한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이라고.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엄청난 행복과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는 세계라고. 그러니 부디 신중히 생각하기를. 그리고 혹시 들어오더라도 조금은 천천히 들어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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