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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an 25. 2022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이번 시터가 별로인 것 같다고

워킹맘의 비애


리 동네엔 시터분들이 많다. 첫째 어린이집에도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사람들 중엔 반 이상이 시터분들이다.


나는 약 1년간 직접 시터를 고용해봤다. 또 주변 친한 엄마들이 모두 시터를 고용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좋은 시터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것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시터분들에게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돈을 버는 수단 이상이기 힘들다.)


그러다 아는 엄마가(워킹맘) 기존 시터분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로운 시터분을 고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고서야 구한 새로운 시터였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시터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 시터는 내가 그 아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의식하지 않은 채 평상시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터분은 결코 아이에게 학대라고 할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엄마라면 알 수 있는 분명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 시터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채, 묵묵히 길을 걸어만 갔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에게 되려 모진 말들로 기어코 아이를 울리고야 말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데리러 올 수 있겠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는 워킹맘이었으므로.


보다 못한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는 울지 말라며 달래주었다.


아이를 때리거나 욕을 하지도 않았건만, 내 아이가 저 시터에게 맡겨졌다면 나는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알기에. 또한 대부분의 시터들에게 이 이상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을 알기에.(물론 정말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는 시터도 간혹 있다.) 또한 이 이상의 시터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감시하는 눈으로 아이와 시터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나는 요즘 동네를 다니며, 세상 모든 엄마를 대변하는 마음으로 시터분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살펴본다. 혹여나 누군가 아이에게 명백한 학대를 가하는 것 같아 보이면 언제든 연락해줄 요량으로.


아이에게 최선이 아닌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일하는 엄마들은, 그렇게 마음으로 울며 아이를 맡긴다. 부디 아이가 크나 큰 상처는 받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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