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거미

by 돌강아지



부엌에서 엄청 큰 거미를 놓쳤다.

싱크대 벽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엄청 크고 까만 거미

내가 조금만 더 빠르고 야무졌다면...


저렇게 큰 거미가 도대체 어디서 들어왔을까?

진짜 크다.

아 심란하다.

아 찝찝하다.


엄마는 지네만 아니면 괜찮아한다.

언니도 나중에 다시 밖으로 나올거라는둥,

문이 있으니까 방에는 안 들어온다는 둥,

어차피 눈에 안 보였으면 몰랐을 거라는 둥.

괜찮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이미 봤는데?

크기가 동전만 하던데...


심란하다.

밖에 내다 줄 건데 제발 평화롭게 다시 나왔으면.


아 집에 들어오는 벌레가

사슴벌레나 개똥벌레면 얼마나 좋을까!




거미를 다시 발견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청소한다고 걸레질을 하다가 발견했다.

빨래통을 치우고 걸레를 휘두르는데

거미가 구석에 숨어 있었다!


거미를 놓치고 나서 밤에 잘 때

'거미가 평화롭게 다시 나타나서

평화롭게 밖에다 내다 주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는데 진짜 그렇게 됐다!

페트병 채집통과 쓰레받기에 담아내다 줬다.

지금까지 그 통을 거쳐간 벌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기겁했었는데

다시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똑같은 거미인데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르다.

거미를 찾아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


요즘 언니랑 벌레가 들어오는 틈을 막느라 고생이다.

방충망도 새로 붙이고

욕실 틈도 막느라 실리콘 쏘고 다니고.


벌레들이 이를 불쌍하게 여겨 더는 들어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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