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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의 친구

by 돌강아지


아침 운동을 하다가 또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다.

언니랑 같이 걷다가 언니가 풀꽃 사진을 찍는다고 하길래 나는 서서 머위 잎이 연잎만큼 커진 걸 보고 있었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인데 누가 걸어와서 쳐다봤다.

눈도 마주쳤는데 시력이 안 좋아서 누군지 몰랐다.

멀뚱멀뚱 쳐다보기 뭐해서 옆으로 돌아 다시 머위만 뚫어지게 봤는데 알고 보니 우체부 아저씨였다.

나중에 가깝게 지나갈 때 먼저 인사해주셨는데

조금 전에 인사를 안 하고 돌아서 있었던 게 민망했다.


아저씨가 사진 찍냐면서 페이스북에 올리냐고 했다.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다.

언니는 아저씨 개한테도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아저씨한테도 안 했는데??

아저씨네 개는 똥개라고 했다.

뒷덜미 부분에 보라색 약 자국이 있었다.

피부병인가?

예전에 우리 집 염소도 보라색 약을 뿌렸었는데.

아무튼 쉬는 날인데도 늦잠 자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개를 산책시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저씨 팬이지만 자꾸 버찌 따먹다가 마주치고

못 알아보고 쌩까고(?) 그래서 이제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저번에 비 올 때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열어 봤다.

늘 쭈구리였지만 고등학교 때 정점을 찍은 것 같다.

고3 때는 반에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엄청 힘들었는데 졸업 앨범을 보니까 그때가 그리웠다.

생각해 보니까 행복했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웠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남들처럼 보내지 못한 미련과 후회 때문에.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때가 그립다.


사람들은 학창 시절 추억이 많고 그때를 제일 그리워하던데

떠올릴 추억이 많은 건 어떤 느낌일까?

떠올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마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수학여행 때 친구들은 이런 옷을 입고 왔었구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앞머리가 있구나,

아 얘랑도 같은 반이었네,

얘네 둘은 사진 찍을 때 항상 활짝 웃네.

활짝 웃으니까 예쁘다 하고.

명 한 명 그리다가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 친해서 그랬지

친구 했으면 다 좋았을 좋은 애들이라고.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모든 걸 해볼 수 있다면

5일만 고3 때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 반 친구들이랑 하나도 빠짐없이

친구 하며 친하게 지내보고 싶다.

하루는 교실에서 평범하게 수업 듣고 하루는 체육대회 하고, 하루는 학교 축제하고 또 하루는 소풍 가고


마지막 하루에 졸업사진 찍고 헤어져야지.


개똥벌레 노래 너무 슬프다.

음이 좋아서 자주 불렀는데 가사가 이렇게 슬펐던가.

야이 곤충들아 개똥벌레랑 친구 좀 해줘라.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손을 잡아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울다 잠이 든다




해 질 녘 창밖.

여름 노을은 주황색이 아니라 핑크색이다.

예쁘다.

언니가 텁텁한 미숫가루 색 커튼을 달았다.

별로 마음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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