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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의 친구
by
돌강아지
Dec 21. 2021
아침 운동을 하다가 또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다
.
언니랑 같이 걷다가 언니가 풀꽃 사진을 찍는다고 하길래 나는 서서 머위
잎이 연잎만큼
커진 걸 보고 있었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인데 누가
걸어와서 쳐다봤다.
눈도 마주쳤는데 시력이 안 좋아서 누군지 몰랐다
.
멀뚱멀뚱 쳐다보기 뭐해서 옆으로 돌아 다시 머위만 뚫어지게 봤는데
알고 보니 우체부 아저씨였다.
나중에 가깝게 지나갈 때 먼저 인사해주셨는데
조금 전에 인사를 안 하고 돌아서 있었던 게 민망했다
.
아저씨가
사진 찍냐면서 페이스
북에 올리냐고 했다
.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다
.
언니는 아저씨 개한테도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
나는 아저씨한테도 안 했는데??
아저씨네 개는 똥개라고 했다
.
뒷덜미 부분에 보라색 약 자국이 있었다
.
피부병인가
?
예전에
우리 집 염소도 보라색 약을
뿌렸었는데.
아무튼 쉬는
날인데도 늦잠
자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개를 산책시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저씨 팬이지만 자꾸 버찌 따먹다가 마주치고
못 알아보고 쌩까고(?) 그래서 이제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
저번에 비 올 때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열어
봤다
.
늘 쭈구리였지만 고등학교
때 정점을 찍은 것 같다
.
고3 때
는 반에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
엄청 힘들었는데 졸업
앨범을 보니까 그때가
그리웠다.
생각해 보니까 행복했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웠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
남들처럼 보내지 못한 미련과 후회 때문에.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때가 그립다
.
사람들은
학창 시절 추억이 많고
그때를 제일 그리워하던데
떠올릴 추억이 많은 건 어떤 느낌일까?
떠올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마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
수학여행
때 친구들은 이런 옷을 입고 왔었
구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앞머리가 있구나,
아 얘랑도 같은 반이었네,
얘네 둘은
사진 찍을 때 항상 활짝 웃네.
활짝 웃으니까 예쁘다 하고.
한
명 한 명 그리다가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 친해서 그랬지
친구 했으면 다 좋았을 좋은 애들이라고.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모든 걸 해볼 수 있다면
5일만 고3 때로 돌아가고 싶다
.
우리
반 친구들이랑 하나도 빠짐없이
다
친구 하며 친하게 지내보고 싶다.
하루는 교실에서 평범하게
수업 듣고 하루
는 체육대회 하고, 하루는 학교 축제하고 또 하루는 소풍 가고
마지막 하루에 졸업사진 찍고 헤어져야지
.
개똥벌레 노래 너무 슬프다
.
음이 좋아서 자주 불렀는데 가사가 이렇게 슬펐던가
.
야이 곤충들아 개똥벌레랑 친구 좀 해줘라
.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
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손을 잡아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울다 잠이 든다
해 질 녘 창밖
.
여름 노을은 주황색이 아니라 핑크색이다
.
예쁘다
.
언니가 텁텁한
미숫가루 색 커
튼을 달았다
.
별로 마음에 안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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