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염소와 단둘이

by 돌강아지

어릴 때 우리 집은 염소를 키웠다.

까만 흑염소.


번은 어미 염소가 산에서 새끼를 낳았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어미 염소가 새끼 때문에 우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랑 같이 염소를 데리러 산에 갔다.


어미 염소는 찾았는데 새끼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새끼 염소를 찾아올 테니 어미 염소가 어디 못 가게 잠깐만 같이 있으라고 했다.

날이 어둡고 산이라서 무서웠는데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염소랑 단둘이 있는데 너무 무섭고

나무들도 이상하고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염소가 까매서 같이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잘 티도 안 났다.


조금 있다가 아빠가 새끼 염소를 찾아서 왔는데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때는 마냥 무섭고 까만 흑염소는 같이 있어도 보이지도 않고 아무짝에도 의지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아니다.

까매도, 밤보다 더 까매도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만지면 따뜻하고 옆에서 숨도 쉬고.


나처럼 겁도 많아서 저도 같이 두근두근 하고 있었겠지.

겁도 많고 식탐도 많고 쓸데없는 고집도 많은,

나랑 많이 닮은 염소.


그때 그렇게 남남처럼 있지 말고 서로 안고 있을 걸.

돌이켜보니까 나에게는 그날의 무서움보다는

염소가 준 따뜻한 그리움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고집불통 까만 겁쟁이가 나에게 위안이 되고 있었다니!

냄새나는 고집불통 먹보 겁쟁이 조금 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밀가루 샴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