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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와 단둘이
by
돌강아지
Dec 21. 2021
어릴 때 우리 집은 염소를 키웠다.
까만 흑염소.
한
번은 어미 염소가 산에서 새끼를 낳았다
.
날이 어두워지는데 어미 염소가 새끼 때문에 우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
아빠랑 같이 염소를 데리러 산에 갔다
.
어미 염소는 찾았는데 새끼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
아빠가 새끼 염소를
찾아올 테니 어미 염소가 어디 못
가게 잠깐만 같이 있으라고 했다
.
날이 어둡고 산이라서 무서웠는데 어쩔 수 없었다
.
아무튼 염소랑 단둘이 있는데 너무 무섭고
나무들도 이상하고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
더군다나 염소가 까매서 같이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잘 티도 안 났다
.
조금 있다가 아빠가 새끼 염소를 찾아서 왔는데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
그때는 마냥 무섭고 까만 흑염소는 같이 있어도
보이지도 않고 아무짝에도 의지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아니다.
까매도, 밤보다 더 까매도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만지면 따뜻하고 옆에서 숨도 쉬고.
나처럼 겁도 많아서 저도 같이 두근두근 하고 있었겠지
.
겁도 많고 식탐도 많고 쓸데없는 고집도 많은,
나랑 많이 닮은 염소
.
그때 그렇게 남남처럼 있지 말고 서로 안고 있을
걸.
돌이켜보니까 나에게는 그날의
무서움보다는
염소가 준 따뜻한 그리움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그 고집불통 까만 겁쟁이가 나에게 위안이 되고 있었다니!
냄새나는 고집불통 먹보 겁쟁이 조금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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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추억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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