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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자 걸음

by 돌강아지


나는 8자로 걸음을 걸었는데 대학교 때 고쳤다.

가족들이 나보고 걸음걸이 좀 고치라고 했을 때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었는데 좋아하던 오빠가

내 걸음걸이를 얘기하는 걸 듣고 바로 고쳤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오빠가 나한테 말했다.

"깡지 니 8자로 걷네. 오빠도 예전에 안쪽으로 걸었었는데 고쳤다. 연습하면 고칠 수 있다"

이 말을 듣고 띵-하면서 당장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발을 의식하고 일자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번은 밖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걸어왔는데

오빠가 내 뒤에서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엄청 신경 써서 걸었다.

그때 오빠가 "깡지 이제 8자로 안 걷네"라고 해줬는데

날아 갈듯이 기쁘고 뿌듯했다.



오빠를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첫인상은 오히려 안 좋았다.

처음 봤을 때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안 받아줬었다.

그래서 선배지만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번은 뭐 사러 갔다가 내가 좋아했던 오빠가 감기가 걸렸다고 한 게 생각나서 약국에서 쌍화탕을 하나 사다 줬다.

그때는 오빠를 좋아해서 준 게 아니라 같이 근로하는 선배니까 친해져야 하니까 사다 준 거였다.

근로를 처음 시작해서 선배들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그 누구라도 감기에 걸렸으면 쌍화탕을 사다 줬을 거다.


근데 오빠가 감동받았는지 그 뒤로 잘해줬다.

다른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면

다른 사람을 좋아했을 수도...?

아무튼 잘해주니까 그때부터 오빠를 좋아한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영향을 준다.

잘 보이려고 발전하니까.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지만

내 걸음걸이를 고쳐준 오빠에게 고맙다

물론 지금도 걸음걸이가 예쁘지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짝사랑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재밌어서 다 읽어버릴까 아까운 소설책이

읽어도 읽어도 아직 멀어서 다음날에도 읽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도 모르고

나랑, 또 나랑만 아는 비밀이라는 것도 재밌다.


나빠지지도 않았고

좋아지지도 않았으니까 나름 해피엔딩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끔 이런 웃기고 터무니없는

생각도 든다.


'오빠는 좋겠다 내가 좋아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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