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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강아지

by 돌강아지

저번 추석에 엄마가 억새가 예쁘다며 한아름 꺾어왔다.

현관문 밖에 걸어놨는데

밤이면 오므라들고 낮이면 다시 활짝 펴진다.

꺾어서 물에 꽂아 놓은 것도 아닌데 밤낮으로 피고 진다.

추석부터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대로다.

아직도 피고 지고.

신기하다.


낮에 활짝 핀 억새는 참 보기 좋다.

다시 북실북실해져 있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두 눈을 감고 억새를 쓰다듬으면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같다.

동네를 아무렇게나 쏘다니다가 여기저기 풀씨를 잔뜩 붙이고 온 작은 개 같다.

빗질해주고 매일매일 목욕시켜주는 개가 아니라

그냥 동네 개.


억새가 내가 떠올린 강아지처럼 따뜻하다.


저번에는 현관 앞에서 뱀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문을 여닫으면서 아래를 안 보는데

그날은 문을 닫고 나오면서 아래를 봤다.

그런데 작은 뱀이 현관으로 들어가려다가 문틈에 끼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문을 움직이면 집안으로 들어갈 것 같아서 우선은 그대로 두고 언니를 불러서 뱀을 보고 있으라고 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서 뱀을 치웠다.

집안으로 들어갈까 봐 문으로 눌렀는데 미안하다.

고의가 아닌 고의였다...

뱀이 문에 끼인 후유증으로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못하더니 나중에는 괜찮은 것 같았다.

현관문 앞에 있다가 문이 열리니까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었나 보다.

발아래를 안 봤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 뒤로 현관문을 여닫을 때 아래를 확인하는 불필요한 버릇이 생겼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귀찮은 버릇.

뱀이 다시 현관 앞에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의 희박하겠지?

귀찮으니까 이제 안 보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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