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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있는데 왜 따는데

by 돌강아지

작년에 그늘진 숲길에서 꽃향유 언덕을 봤다.

그늘에 가려진 보라색이 더욱 진하고 선명했다.

꽃향유는 방아꽃과는 또 다르다.

더 진하다.

어떤 잔상, 인상 같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맨드라미와 꽃향유는

요술쟁이가 키우는 꽃 같다.


작년 생각이 나서 다시 그곳에 가봤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꽃이 없었다.


어느 날은 맨드라미를 열네 개나 봤다.


후리스를 샀다.

남녀 공용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엄청 컸다.

털도 어딘가 조금 후줄근한...

야생 곰 같기도 하고 그렇다.

언니는 임꺽정 같다고 했다.

컴퓨터 할 때 쓰는 시력보호 안경이 있는데

이 후리스를 입고 컴퓨터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아주 볼만하다.

이렇게는 택배도 못 받겠다.


과일 중에 감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언젠가부터 감이 제일 좋다.

값도 싸고 맛있고 먹기도 좋다.

날이 쌀쌀해지면 수분이 많고 차가운 과일은 안 땡기고

딱 이 감이 먹기 좋다.

요즘 제철이라 많이 먹고 있다.

그제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큰 감을 한 봉지 가득 주셨고

어제는 엄마 회사 아주머니가 한 봉지 주셨다.

감사하다.

내 최애 과일인데 언니도 요즘 감이 제일 좋단다.

뭔데... 나랑 겹치지 마.


얼마 전에 아침 운동을 하면서 탱자나무를 봤다.

탱자가 예쁘고 향기도 좋아서 몇 개 따 가려고 했다.

근데 언니가 바닥에 있는데 왜 따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바닥에 있는 건 뭐가 묻었고 별로라고 했다.

한 네 개쯤 따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따려고 하는데

언니가 또, 왜 이렇게 많이 따냐고 했다.

그 뒤로 서로 말도 안 하고 따로 왔다.


보니까 탱자나무 만나기 전에 언니가 좀 더 운동하자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해서 그런 듯하다.

그럴 때 언니는 상어 같고 나는 문어 같다.


상어 나쁜 노마 내가 탱자 따면 몇 개나 딴 다고!


마당 테이블에 탱자를 올려 뒀다.

햇빛에 잘 마르면서 향이 진해졌다.



며칠 뒤에 언니가

"마당에 나갔는데 탱자 향 좋더라"라고 했다.


문어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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