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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990원

by 돌강아지

식물이 돌이 되기로 결정하면 모과가 되지 않을까.


모과가 하나둘 떨어지더니

이제 나무에 매달린 모과는 몇 개 없다.

모과가 떨어질 때 맞은 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무지 아팠을 거다.

봄에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더니 그 연한 꽃에서

이렇게 단단한 것을 만들어냈다.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것.


우리 집에는 모과를 먹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모과차가 생각나긴 하지만

두어 번 먹으면 먹지 않는다.

모과차를 담아도 되지만 모과가 벌레 먹거나

거의 상태가 좋지 않다.


어느 날 모과가 떨어지면

주워다가 그냥 마당 한쪽에 줄지어 놓는다.

하나둘 가져다 놓은 게 여덟 개쯤 되는 것 같다.

가까이 가면 모과향이 난다.


지난여름, 초록색 모과를 보며

따서 한입 베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모과도 감처럼 맛있어서 바로 따서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땅으로 떨어지면서 깨진 모과 조각이

햇볕과 바람에 며칠을 마르더니 주황색으로 변했다.

신기하다.

주황색으로 변하는구나.


저번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었다.

온수는 되는데 난방이 안 됐다.

집주인 아저씨가 설비를 하셔서 아저씨께 말하니

만물박사처럼 고쳐주셨다.

문제는 보일러를 너무 안 써서 기름때가 끼고 막혔던 것.

작년 겨울에 쓰고 난방을 안 썼다.

기계는 안 써도 한 번씩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모터 가운데 나사 같은 곳을 일자 드라이버로

좌우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니까 신기하게도 다시 됐다.

움직여서 막혔던 것을 풀어준 것이다.


근데 우리가 난방이 다시 되지 않을까 싶어서

보일러를 계속 틀어놨었는데 그것 때문에 모터가 엄청 열이 받고 뜨거워져 있었다.

아저씨가 그렇게 하면 작게 고장 난 거 크게 고장 난 다고 했다.

모터까지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드라이버로 될 일을 모터까지 고장 낼 뻔했다!

아저씨가 기계는 고장 나면 무조건 코드를 빼거나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고쳐져서 진짜 다행이고 감사하다.

친절하고 못하는 게 없는 주인아저씨.


이번에 배운건 보일러가 고장 나면

우선 코드 뺐다가 다시 꽂아보기.

너무 사용을 안 해서 막혀서 그럴 수 있으므

일자 드라이버로 왔다 갔다 해보기.

아 그리고 안 되는데 혹시 될까 싶어서 난방 계속 틀어놓지 않기!



요즘 노란 은행잎이 정말 예쁘다.

은행잎 단풍이 제일 예쁜 것 같다.

나무도 은행나무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열매가 고약해서 그렇지 은행나무는 참 깔끔한 나무다.

잎도 떨어질 때 막 부스러지지 않고 깔끔하고.

벌레들도 쫓아준다고 한다.


나무는 만져보면 한겨울에도 차갑지 않다.

언제나 그 온도.

나무는 따뜻하다.


서리가 내리면서 부지런히 상추를 뜯어먹고 있다.

어제도 사다리에 올라가 상추를 뜯는데

고엽이가 지나갔다.


어제 하나로 마트에 갔더니

개점 10주년이라고 바나나 한 손을 990원에 팔았다.

오!! 하며 세 개나 사 왔다.

오는 길에 노각 준 아주머니를 만나서 바나나를

조금 나눠드렸다.

"바나나가 990원 하더라구요."

"엄청 싸네. 천 원도 안 하네."



드리고 집으로 오는데

너무 작게 나눠 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나는 세 손이나 샀는데 몇 개만 떼어 드린 게 쫌생이 같다.

그냥 한 손 드릴걸...

그동안 몇 번이나 얻어먹었는데!

아주머니도 내 장바구니에 바나나 가득한 거 보셨을 텐데...


소심한 놈 하루가 지났는데 잊어라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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