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로 시작하는 주어가 사라지는 날을 꿈꾸며
엄마, 나는 내 삶의 가장 좋은 면을 바라보고 싶어.
왜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아?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미국의 관세 전쟁과 AI 미래에 살아남을 직업과 나는솔로 24기와 도에치(Doechii)의 ‘Denial Is River’가 흘러. 그리고 어떤 날은 상관없는 영상을 보고 손뼉을 치지. 그날은 슈카월드에서 다룬 우리나라 자살률과 책 「임포스터」를 쓴 리사 손 교수의 한국식 소통과 엄마가 자주 하던 ‘이왕이면’이라는 말과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육각형 모델에서 무언가를 찾아버린 날이었지.
슈카월드에서 그러더라.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라고. 자살률이 역대급으로 높았던 2011년과 동일한 수준이래. 옆나라 일본은 청소년 자살률이 너무 높다고, 이시바 총리가 나서서 바로잡겠다고 피 토하는 마당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잠잠해. 조타실이 텅 빈 상황이니 그렇다 쳐야 할까?
어느 날은 리사 손 교수의 「임포스터」를 알게 됐지. ‘임포스터’는 지나치게 겸손한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증세(!)로, 과도한 자기 검열과 완벽주의에 자신을 PR 하지 못하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으로 보였지. 아쉽게도 책을 읽진 못했고, 대신 저자가 나오는 다른 영상을 봤어. 주제는 메타인지. 다들 메타인지 하면 셀프-모니터링만 생각하는데, 드러내서 상대의 피드백까지 받는 게 한 사이클이래. 문제는 한국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너무 조심스럽다는 것. 저자는 한국인이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키거나 부딪히면서 상대의 피드백을 듣는 데 능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지.
이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면서 슬펐다. 이거랑 자살률이 관계있다고 느껴져서. 둘이 무슨 관계냐고? 메타인지의 대상이 커리어와 그에 대한 조언뿐이겠어? 힘들면 친구한테 ‘나 힘들다’ 말하는 것도 메타인지의 시작이라구. 애플의 마케팅을 ‘Why’로 설명한 사이먼 시넥[1]이 그랬다. 힘들 땐 친구에게 ‘혹시 8분 있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여는 순간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곤 하니까. 친구의 톡을 보는 순간 그의 상태를 감지하곤 하니까.
계속해볼게. 요즘 육각형 인간 난리지? 이것도 지나간 이슈일지도. 암튼 그놈의 죽여버릴 ‘평균’ 얘기를 하려고 해. (때로는 욕을 붙여야만 하는 때가 있으니 이해해 주라.) 평균이 죽여버린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외모도, 성격도, 집안도, 경제력도, 학력도 다 평균 이상인 인간. AI가 영화 <그녀>처럼 우리 각자와 연애할 정도로 매력적인 무엇이 될지 모르는데 육각형 운운이라니.
유사 이래 부모보다 가난해진 첫 세대가 지금의 MZ라지? 그런데 엄마는 작금의 상황을 모르시는지 ‘엄마보다 나은 삶을 살아’라고 주문해. 엄마, 그게 안 된다니까요. 엄마는 당신이 힘들었으니까 자식은 좀 더 윤택하게 살길 바랄 뿐이라고 해. 하지만, 그게 안 돼요, 엄마. 당신보다 더 나은 삶, 이라는 말을 들을 때 숨이 가빠진다고요.
부모님이 말하는 better than me가 서글프게 아플 때. 모두가 떠드는 better than you가 이 지경에 도달하게 된 비결이란 생각이 들 때. OECD 평균 2.5배를 웃도는 자살률과,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밝히는 데 미숙한 성격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환경과 모두가 옆사람보다 조금 더 우위를 점해야만 안심하는 분위기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삶에 대한 이상이 신화처럼 부릅뜬 가운데
우리나라 자살률은 ‘여기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고 믿는 이가, 육각형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 혹은 각에도 들지 못하는 고민을 안은 이가 주변 사람 붙들고 ‘내 얘기 좀 들어줄래’ 한 마디 못해서 죽어간’ 결과라고.
‘이왕이면’
이 말에는 현재와 여기는 없고 미래와 저기만 있어. 가능태의 미래와 내 것이 아닌 저기가 아니고선 말해질 수 없는 현재와 여기. 자신의 현재와 여기를 말하는 것을 금지한 사람들이 현재와 여기에서 사라지는 흑마법이 일어나는 곳이 이곳 대한민국이라고.
솔직하자. 지금 텅 비어있다고. 속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힘든 거라고 받아들이자고. 인생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니까. 스스로 채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남들이 바라는 대학, 남들이 꿈꾸는 회사,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자, 곁눈질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과 자산,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자식. 남으로 점철된 삶을 끝장내자고.
영영 만족시킬 남은 평생 존재할 테니까. 이제 그만 끝내자. 너와 나를 서열 세우는 일을. 기준 없이는 너와 나를 말할 수 없는 일을. 남이라는 기준을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사랑해서, 자기 삶에 사랑이 너무 많아서 몸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넘쳐 흐르기를. 타인의 보여진 삶을 뒤쫓는 대신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남들’에 표본을 제공하는 무수한 너의 데이터 대신 ‘남들’로 포섭되지 않는 무한한 너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심장이 부서져 내리는 날 친구에게 8분의 통화를 요청할 수 있다면
얼굴 없는 모두가 바라는 미래와 저기를 비울 수 있다면
‘다들’로 시작하는 주어가 완전히 사라질 때
스스로 사라짐을 택한 이가 단 하루도 없는 날
선택하지 않은 태어남을 기꺼워하는 때가 올 거야
*엮은 단상들 : 슈카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심각한 자살률, 「임포스터」 저자 리사 손 교수가 말하는 끝까지 소통하지 않는 한국인, ‘나처럼 살지 말아라’는 어른들의 말씀과 평균과 충분함을 헷갈리는 육각형의 함정, 고점을 찍은 자살률과 저점을 갱신하는 출생률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레퍼런스 출처
슈카월드, 그런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
리사 손, 세바시 인생질문 내 능력을 확장시키는 '진짜 메타인지' 방법
사이먼 시넥, It Means "I Need You": The Power of 8 Minutes
[1] 자기 계발과 마케팅 분야의 컨설턴트. TED에서 진행한 애플의 ‘WHY’ 강의로 유명하다. 본 영상은 How Great Leaders Inspire Action.
표제 이미지 | @shawnanggg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