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불불헛뛰

세뱃돈이라는 사기극

이모, 저 세뱃돈 주지 마세요

by 궁금한 민지

*해당 글은 ‘자본주의 연속극(가제)’ 시리즈의 일부로 부정기 연재 중입니다.



조기 교육은 중요하다. 선행 학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처음에 이식된 관념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다. 최초의 지식은 끈적하다. 머릿속에 들어오면 아주 끈끈하게 협착을 일으킨다. 뇌 회로에 끈끈이가 자리한 걸까? 이후엔 뭔 수를 써도 쉽지 않다. 자신이 이때껏 쌓아온 삶에 대한 지식이 엉뚱한 방향이었음을 시인하기까지.


세뱃돈은 대사기극이다. 어른들은 몰랐을 거다. 특정한 날 뿌리는 세뱃돈이라는 게 아이들의 머리에 어떤 인상을 심어줬는지를. 머리를 조아리면 뒤통수에 닿는 투박하고 다정한 손. 과거에는 푸른색, 지금은 노란색 지폐가 가을날 은행잎처럼 풍성히 떨어진다. 하늘에서 돈이 내려오는 날. 이 멍청한 조기 교육을 어떡하지?


다 커서 무슨 부모 탓이냐 하겠다. 그럼에도 어린 날 머릿속에 심어진 반복학습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가만히 있는데 쏟아지는 돈은 최악의 돈. 세상에 뿌려진 돈만큼 비지떡이 없다. 사랑은 쏟아질수록 사랑을 뱉어내며 불어나지만, 돈은 쏟아지면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며 점점 값싸진다. 가장 끝에 다다른 돈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흔하다는 것을.




세뱃돈이 사악한 점을 순차적으로 따져보겠다. 하나, 현찰만이 돈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래, 나는 08학번, 89년도에 태어난 내게는 사실이기도 했다. 대학교 2학년에 산 스마트폰을 떠올린다. 디지털, 모바일 환경은 당연하지 않았다. 배달 음식을 시키면 식당 소속의 배달부가 도착했다. 라이더 아니고 배달부. 직접 돈을 건넨 기억도 수두룩하다. 분명 그 시절엔 현금이 돈이었다. 문제는 변화한 시대를 내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거다.


둘, 수중에 돈이 생기면 좋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래, 현금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라고 누가 말해줬어야 한다. 너 지금 들고 있는 거 종이 쪼가리야. 밟히는 한순간 바스러질 바짝 마른 종이 말야. 심지어 그렇게 받은 현금을 엄마한테 건네면 엄마가 대신 저금해 은행 계좌로 보여줬다지. 저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지나쳤다. 때로는 당장 킥보드를 지르고 거리를 누비거나, 당장 화구를 사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게 나았음을, 누군가는 알려줬어야 한다.


셋, 나의 돈 늘어남과 너의 돈 늘어남이 모두에게 이득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떡국 값 내놓으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수중에 두둑이 3만 원을 받은 나와 동생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만 원을 내밀고,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이 만원을 내밀겠지. 그마저도 고개를 저으면 그제야 삼 만원을 내밀었을까? 하지만 어쩌지. 임금 인상은 끝이 없단다. 실물경제는 뭣 모르고 부푼 통화량을 다 흡수하려고 든다. 그리고 그때쯤엔 손쓸 방도가 없다지.




하나, 둘, 셋을 결합한 사례가 민생지원금 쯤 되지 않을까. 정부가 찍어낸 생활 지원 차원의 돈은 돈을 카드사 포인트 쯤으로 알게 했다. 내 사용처가 평소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돈에 대한 감각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10,628pt. 만육백이십팔원이 남았네. 메가커피 2.8잔 먹고 남을 돈. 정부가 은행 페이 앱에 찍어주는 숫자가 돈이 될 수 있다니. 숫자로 찍힌 돈은 우스워 보인다. 아니, 원래 숫자가 돈이었다니까?


둘, 셋으로 이어진다. 둘, 시중에 늘어난 숫자들은 어디론가 흩뿌려진다. 많아진 돈은 어딘가로 반드시 흘러가야 한다. 왜 그러냐고? 나도 모른다. 많아진 돈이 은행 잔고와 주식 계좌에만 숨쉬면, 돈을 뿌린 애초의 이유에 부합하지 않는 걸. 모두가 저축하는 세상은 제로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을 예로 들 수 있겠지.

셋, 나와 너의 돈 늘어남은 이득이었을까? 시중에 풀린 돈은 반드시 어딘가를 찾아가야 한다. 잠자고 있는 것보단 그게 낫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도 모른다. 그게 돈의 운명이랜다. 그럼 여기저기 찾아간 돈은 어떻게 될까? 급작스레 늘어난 돈은 몸집을 불린다. 그러니까, 밀도 없이 부피만 불린다는 뜻이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만 원이었던 밥값이 금세 만 이천원이 된다. 음, 음식은 늘어나지 않고 말이다.


발 닿는 곳에서 자맥질을 하고, 스노쿨링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난다. 발이 더는 닿지 않는다. 수면은 올라가고, 이전에 했던 행위로 먹고 살 수가 없다. 생존하려면 2가지 방법이 남는다. 넘쳐나게 불어난 파도에 올라타 언제 고꾸라질지 모를 파도를 일단 타면서 낙차를 먹는 방법. 단, 언젠가 바다라고 생각했던 수용장 물이 새빨갛게 빠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은 더 깊이, 깊이, 먹을 것을 캐러가는 행위를 지속한다. 숨줄이 가물 때까지.




수중에 돈이 많아지는 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꽂아준 너와 나의 돈은 제3자의 주머니도 불어나게 한다. 정작 내 현금흐름은 늘어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러니까, 이천오백원 하던 김밥 한 줄이 몇 년 새 오 천원 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고! 가장 최악은 하나 둘 셋을 응집한, 너와 나의 지갑에 나란히 현금을 꽂아주는 그림이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결론, 함부로 세뱃돈 같은 거 뿌리지 마시라고요. 이상 세뱃돈 줄 여유 없는 이모가 전하는 설 잔소리다. 대신 난, 떡국값을 한 너에게 이익을 안겨줄 금융상품 네 개를 리스트업 해 오면 예수금으로 백만 원을 꽂아줄게.


그러니까 이모, 저 세뱃돈 그냥 주지 마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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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이미지: 픽사베이 @HeungSoon

본문 이미지: 픽사베이 @TheInvestor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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