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는 것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사노 요코의 동화책 ‘태어난 아이’에 나오는 말이다. 태어난 아이는 잠자리에 들며 말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세상일에 무감했다. 아이는 무대가 아닌 관객석에서 세상을 관망했다. 그는 곁의 또래 아이가 울어도, 개가 자신을 핥으며 따라와도 무심했다. 어떤 사건과도 무관했다. 문득 아이는 모든 것을 느끼고 감당하기로 한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난다. 태어난 아이는 개한테 물린 상처에 아픔을 느끼고, 엄마 품에 안겨서 울기도 하고, 배고픔도 느끼면서 자신을 헤집는 슬픔과 기쁨을 느낀다.
방영 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건설회사의 부장으로 일하는 중년 남자와 파견직 경리로 일하는 스무 살 여자가 나온다. 여자에게는 청각 장애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있다. 여자는 생활비를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녀는 부양 의무가 없으니 장기요양을 신청하라고 말한다. 남자는 마트에서 훔친 카트에 할머니를 태우고 뒷산에 올라 달을 보는 여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할머니를 업은 채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빚쟁이에게 맞은 통증을 잊으려 술을 마시는 여자에게 아프면 약을 먹으라고 말한다. 남자는 삶의 오르막길에서 주저앉기 직전인 여자의 손을 붙잡는다.
당신은 타인의 삶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가.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삶에 엮일 가능성에 놓인다. 우리가 만나는 인물들은 지방에서 자식을 보러 막 서울역 기차에서 내려 1호선 탑승 위치를 묻는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밤이면 물건을 던지는 소리가 나는 옆집에 사는 소년일 수도 있고, 돌봐줄 사람 없이 병상에 눕게 된 친구일 수도 있고, 노령 연금을 문의하자 온라인으로 신청하라고 무뚝뚝하게 답하는 동사무소 직원 앞에서 당황하는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삶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환대하는 일이다. 최근 본 영화 <소공녀>에는 집 없이 떠돌며 가사 도우미를 청하는 여자가 나온다. 여자에게는 과거 밴드로 함께 활동한 친구들이 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로 추정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여자를 받아주지만, 또한 저마다의 이유로 그를 밀어낸다.
키보드 담당이었던 친구는 팔자에 없는 요리를 하며 방음도 되지 않는 집에서 몇 년째 시험만 치르는 남편과 시부모와 살아간다. 자신의 사적인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그가 친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 친구는 아내 때문에 마련한 신혼집에 홀로 남겨져 있다. 그는 아내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과 빚더미로 인해 타인과 교류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돈 많은 집에 시집간 언니는 화목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남편을 떠받들며 침묵하는 가구 같은 삶을 산다. 그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자신의 과거를 말하고, 담배를 태우는 여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야기는 타인을 위해 곁을 내어주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들은 각자 특정한 부분에서 부자유하다. 타인이라는 손님을 맞이하려면 물리적, 정서적인 면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감정을 추스르고, 돈이 있되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다.
‘나의 아저씨’ 중간에 여자는 말한다. 나를 도와준 사람이 없었을 거로 생각하지 말라고. 네 번까지 도와주면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도망갔을 뿐이라고. 남자는 한 번도 돕지 않는 사람도 있다며 그만하면 착한 사람들이라고 읊조린다. 여자를 본 이들은 처음엔 여자를 안쓰럽게 여기고 돕다가, 양심상 그를 외면하지 못하다가, 결국 하나둘 멀어졌을 테다. 일일드라마 같던 자신의 하루에 찾아온 불청객에게 카메오 역을 내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
당신 마음의 방에는 누군가를 들일 공간이 있는가.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감동적일 수는 있지만, 불유쾌하며, 귀찮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접촉은 그 자체로 우리를 태어나게 한다. 나는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게도 ‘행인1’, 나아가 ‘이웃’이나 ‘친구 1’이라는 배역을 줄 수 있을까. 내가 환대한 사람, 감당한 사람, 외면한 사람은 곧 나 자신일지 모른다. 당신 삶은 당신이 맺거나 거부한 관계 그 자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사노 요코, 황진희 역,『태어난 아이』, 거북이북스, 2018
<소공녀>, 전고운 감독, 2018
<나의 아저씨>, 2018. 3.21~(방송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