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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가 불행의 시작이라고요?

문제는 혼전순결이 아닙니다

by 궁금한 민지

오늘은 며칠 전 새벽에 본 글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섹스는 보수적일수록 좋다 - 혼전순결 지지론”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요.

필자는 여러 사람과의 섹스 경험은 진짜 부부가 됐을 때 방해가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한 번 본 맛은 잊히지 않기 때문이라네요. 비교항이 늘어난 만큼 잠자리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답니다. A는 이렇게 해줬는데, B는 이런 걸 잘했는데,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는 뜻이죠. 속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말은 다수와의 성관계를 전제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일이라고요.

필자는 세단부터 SUV까지 승차감과 연비 등 다양한 특징을 갖춘 차종을 시승한 드라이버라면, 섹스에 대한 취향과 눈높이가 발달한 만큼 때마다 특정한 차종이 떠오를 거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이유로 혼전순결을 지킨 부부가 낫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들에게 섹스에 대한 만족은 ‘다른 상대보다 네가 더 좋다’가 아니라,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다’가 되기 때문이죠. 전자는 성적 쾌락에 입각해 동물적이며, 후자는 인고의 시간을 거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따라옵니다. 열심히 끄덕이다가, 문득 ‘과연 그런가?’하고 자문했습니다.

비교항이 늘수록 괴로운 걸까요? 하지만 A와 나누는 섹스 말고 B와 했던 정사가 떠오른다고, 당장 내 곁의 A를 치우고 B와의 침대로 타임리프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성숙한 사람이라면-최소한 상대가 그저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면 (심지어 단순 파트너여도 그렇지 않을 듯합니다)-알량하게 ‘아, B는 안 그랬는데......’ 따위의 한탄을 늘어놓진 않을 겁니다. 대화를 통한 정서적 교감은 물론이고, 육체적 관계 역시 각자 아쉬운 점을 표현하고, 서로 바라는 점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게 성숙한 연인 사이니까요.

‘비교=불행’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경험이 많다는 사실로는 부족합니다. 손가락 까딱 않고 상대가 기대에 부응해줬으면, 하는 게으른 바람이 불행의 진짜 씨앗이죠. 교양과목 팀플에서 다 된 PT에 숟가락 얹으려는 팀원의 심보와 다르지 않습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 불평해도 늦지 않습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잠자리에서 소질이 부족하다고 대뜸 옛 연인의 이름을 호명하진 않습니다. 파트너십을 갖췄다면, 부족한 스킬을 차근차근 배양해 주겠죠. 섹스는 침대 위의 협업인 걸요.

그건 그렇고, 속궁합은 과연 어디까지 속궁합일까요? 한참 전 JTBC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너 세모? 응 나 세모!” “너 동그라미? 나도 동그라미!”라는 식의 도형 비교로 속궁합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재치가 떠오릅니다. 노력을 무색케 하는 스펙 차라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라면 슬프지만 보내줘야겠죠.

아, 동그라미와 세모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뛰어난 융통성을 지녔고, 세상에는 문명이 낳은 많은 산물들이 있으니까요. 역시 노력이 좀 필요할 뿐입니다.



사진 출처 : unsplash.com (@Katrin Ha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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