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감에서 오는 매혹
에로티시즘의 특징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인데요.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욕망하는 대상이 손 안에 완전히 그러쥐어지지 않는 것이 에로티시즘을 관통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소개한 영화 <화양연화>에 흐르는 서스펜스적 분위기가 에로틱한 감흥을 자아내는 까닭이죠. 사실 에로틱한 감흥은 일종의 문외한적인 감탄과 유사합니다. 쉬운 말로 ‘거리감에서 오는 매혹’이라 해두겠습니다.
어렸을 적 본 에로 영화, 혹은 인생 첫 에로 영화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요? 그 시절은 ‘야동’ 따윈 없고 오로지 비디오 대여점을 중심으로 단결하던 시절이었는데요. 전 영화 <엠마뉴엘>을 꼽고 싶습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태국 방콕으로 떠난 엠마뉴엘의 성적 개화(!)를 그린 영화죠. 주인공으로 분한 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은 사실 백치미와는 무관한 외모입니다. 선이 두드러지는 지적인 얼굴에 야하게 덧칠한 색조 화장이 충돌하면서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죠.
포스터에 엠마뉴엘이 앉아있는 의자는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박나래가 ‘발리풍’으로 꾸미겠다고 작정하고 갖다 놓은 라탄 의자를 연상시킵니다. 프랑스 여성의 눈에 비친 태국 방콕과 우리의 눈에 투영된 인도네시아 발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동남아가 주는 이국성’일 테죠. 프랑스서 태국이 12시간이 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리는 7시간 가량이니 우리가 좀 낫네요(?).
생각해 보면, 제가 <엠마뉴엘>에 매료된 원인에도 이국성이 자리합니다. 엠마뉴엘이 지닌 비주얼적인 충격 외에도, 작곡가 피에르 바슐레가 직접 부른 주제가도 저를 홀린 부분이었거든요. 허스키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부르는 알 수 없는 외국말 노래는 십대 소녀를 매혹하기 충분했죠. 프랑스어 발음에서 두드러지는 공기에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섞은 ‘r’ 소리에 반한 게 분명합니다.
‘emmanuelle chair’라는 단어가 구글링은 물론 인스타그램에서도 유효하게 잡히는 키워드라니, 그저 놀랍습니다. 에로 영화 한 편의 소품이 무려 40년 이상 상징처럼 내려오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이국적인(exotic)’ 것이란 대체 뭐길래 사람을 매혹하는 걸까요? 확실히 낯선 세계로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섹스와 닮은 구석은 분명하네요.
썸네일 사진 : Taylor Simpson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