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내 맘 같진 않죠
평생 비폭력 저항을 외친 간디. 하지만 그가 폭력성을 내비쳤던 대상이 있는데요. 바로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인도를 찾는 관광객이면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꼽히는 카주라호 사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내를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칸다리아 마하데브와 락쉬미나 사원인데요. 일상생활을 담은 모습과 함께 성교를 형상화한 미투나상 조각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인도가 원산지인 다채로운 성행위의 교본이 된 <카마수트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에로티시즘 콘텐츠를 다루면서 어려운 점은 아무리 자기를 확장해도, 결국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존재라는 점입니다. 특히 몸으로 경험한 쾌락과 고통은 사람마다 감각의 역치가 달라서 더 즐겁게도, 더 괴롭게도 다가옵니다. 본연의 성향을 토대로 한 취향이나 생리적 거부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발 페티시라든가, 유독 게이에 거부감을 갖는 이성애자 남성처럼요.
어렸을 적 백합물을 본 덕인지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한 시기가 있었던 덕인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데요. 확실히 장르로는 여전히 BL보단 GL이 편합니다. 물론 픽션이 아닌 현실이라면 또 별개의 얘기겠죠. 이처럼 다들 사회적 눈치보기로 인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 유난히 이해가 안 가는 타인의 섹슈얼리티가 하나쯤 있으리라 봅니다. 자신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걸요.
생각은 몸소 표현하기 전까진 문제가 되지 않죠. 그렇게 각자 내재한 폭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모두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 면에서 카주라호의 조각을 부숴버리고 싶다,라고 한 간디의 폭력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남녀 한 쌍을 일컫는 미투나(mituna) 상은 성적 교합으로 우주와 일체가 되면서 깨달음을 얻는 탄트리즘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 에로틱하게 비치는 대상이 당시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죠. 에로티시즘은 거리감에서 온다는 관점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익명의 공간에서만 털어놓을 수 있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타인의 성적 취향이 있나요? 역겹다는 생각에 벌써 몸서리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망측한 상상과 발칙한 생각을 숨겨놓을, 자아라는 공간이 있으니까요. 요즘엔 온라인이 자아의 서브 스페이스가 되고 있긴 하지만요. 간디가 현재의 한국에 살았더라면, “부숴버리고 싶다” 같은 말을 오프라인에서는 안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