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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Dec 26. 2020

아주 한낮의 섹스를 기약하며

데이유즈의 특별함

숙박시설과 성탄절의 상관관계


크리스마스는   콘돔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입니다. 2012 세븐일레븐의 통계에 따르면, 1  콘돔 일평균 판매지수가 1위를 기록한 날은 성탄절이었습니다. 일평균 매출을 100이라  , 219.6 기록하며 2배의 수치를 자랑했죠. 2위는 이브였다고.  이브가 1위가 아닌지는 궁금하네요. 전야보단 역시 당일인 걸까요.

 

크리스마스는 숙박시설이 특수를 누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숙박 어플 여기어때가 2016 1월부터 11월까지의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예약의 68% 숙박이었고 32% 대실이었는데요.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엔 비중이 어떨까요. 콘돔 판매가 당일에  많은 점에 비춰볼 때 당일 대실이 많지 않을까요. 이튿날이 휴일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Chad Madden, Unsplash




백화점과 모텔의 창문


군부 정권의 통행금지와 맞물리며 연인들의 이벤트로 자리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커플의 동선을 크게 2가지로 상상해 봅니다. 25 낮에 콘돔을 사고, 대실을 끊습니다. 또는 24 저녁 콘돔을 사고, 숙박합니다. 반대가  수도 있겠죠. 모텔의 입실 시각은 이르면 5, 늦으면 9시입니다. 12 서울의 일몰 시각이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임을 감안하면, 모텔에 입실할 때쯤 해가 집니다. 물론  지는 시각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모텔은 낮과 밤의 변화가 차단된 곳이니까요.


대개 모텔 창문에는 블라인드 형태의 나무 이중창이 달려 있습니다. 외부의 시야를 차단하고, 빛을 막는 데 효과적이죠. 간혹 갑갑함을 느껴 문을 젖히면, 맞은편 모텔이 보입니다. 혹은 조그마한 슈퍼나 치킨집 등 나지막한 동네 골목이 눈에 들어오죠. 중심부라면 건너편 빌딩의 사무실 내부가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든 간에 뷰는 형편없습니다.


@Greta Schölderle Møller, Unsplash

오션 뷰니 마운틴 뷰니 따져가며 펜션이나 호텔을 예약하는 것과 달리, 모텔에는 경관을 즐기려는 목적이 부재합니다. 서로에게 탐닉하기 바쁜 이들에게 외부 경관은 중요하지 않기도 하죠. 결국 모텔 방은 창문이 필요 없는 밀폐 공간으로 만들어집니다. 중앙등과 3 이상의 보조등이 빛을 대신하지만 자연광에 비해 턱없이 어둡죠. 언제 입실하든 오후 5시인지 새벽 1시인지 분간할 길이 없습니다. 창문이 무용한 모텔은 의도는 다를지언정 창문이 없는 백화점과  닮아있죠.




황금비 대신 황금빛 햇빛을 받는 기분


언젠가 평일 대낮에 D 호텔의 데이 유즈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은 전에 없던 감상을 일으켰습니다. 시내 쪽으로 크게  유리창으로는 눈부신 빛이 쏟아졌습니다. 새하얀 침구는 손등 핏줄까지 푸르스름하게 연출했습니다. 반사판에 둘러싸인  같았죠. 햇볕이 황금빛으로 물들인 침대 시트를 부드러운 미풍이 훑고 지나갔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광합성을 하는 관엽식물의 기분을 느끼게 했죠.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1907-1908) @Wiki Art

사랑을 나눌 때에는 클림트의 그림 <다나에> 떠올랐습니다. 황금빛 햇볕 줄기가 온몸으로 쏟아지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햇볕은 몸을 계속 데워줌으로써 들뜬 열기를 오래도록 머물도록 붙잡아 주었죠. 한낮의 섹스는 탁월했습니다. 정확히는 한낮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있는공간에서의 사랑이요. 1 럭스의 햇볕 아래 연인의 몸을 취하는 일은 대단한 호사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  3000럭스 이상의 햇볕을 받을  세로토닌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편안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로 관계  불응기에 많이 나오며, 나른함을 일으키죠.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경우라면 ‘햇볕 섹스 특히 도움이  겁니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편안한 상태로 사랑에 하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고층 호텔에서 창문을 열어젖힌  누리는 섹스는 야외 섹스의 기분까지 선사합니다. 당연히 건너편 사무실도 신경  필요가 없고요.




내년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며


미셸 우엘벡의 최근작 <세로토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다른 종류의 기쁨이 점차 섹스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일반적인 삶의 과정에서 섹스는 여전히 우리가 자신의 신체 기관을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개입시키는 유일한 순간이고, 섹스, 특히 강렬한 섹스는 사랑의 융합이 일어나는  필수적인 단계이며, 섹스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머지는 대개 섹스와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1)

섹스는 현대 사회의 일상과는 거리가  경험을 선사합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경험이죠. 일상에서 그만큼 자아를 완전히 놓아버린  몰입하는 때는 없습니다. 자기 계발이 1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이라면 더욱요. 맨몸으로 쾌락이라는 특수성도 죠. 하지만 때로는 색다른 환경에서 나누는 섹스가 꽤 좋은 경험으로 남기도 합니다. 같은 영화라도 일반 상영관과 IMAX관이 다른 법이잖아요?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대낮에 햇볕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사랑을 눠보면 어떨까요. 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또 생겼네요. 섹스 때문에  열심히 일하다니, 이것만큼 귀여운 동력은 없을  같네요. 오늘도 힘내봐요. 호텔의 데이유즈를 위해.


@Egor Myznik, Unsplash






1)<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 84쪽

*표제 이미지: 프랑소와 오종, <영 앤 뷰티풀> 스크린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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