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스러운 글’이 되기를
언젠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기생이었을 거야”
며칠 전 유튜브 ‘사피엔스 스튜디오’에서는 양반집 아내이지만 기생이라 속이고 조정의 대신들과 정을 통한 어우동 얘기가 나왔다. 이미 결혼한 몸, 여러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노비와 관계했다는 게 당대의 가장 큰 죄였다니 작금의 눈으로는 신기할 뿐이다. 그녀가 정서적으로 어떤 결핍을 겪었는지, 정말 성욕이 문제였는지, 유교 사회를 뒤흔들고 싶었든지 까닭은 몰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친구의 말은 내게 칭찬으로 다가왔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는 칭찬처럼 들렸으니까. 과연 운이 좋지 않고서야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서 맘껏 사랑하기엔 쉽지 않았을 테다. 어느 책에서 사랑은 과거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으니. 유한계급으로 태어나는 것도 복이지만, 사람은 가지지 못한 걸 욕망하는 법. 그 시절에 규방에 갇힌 몸으로 태어나 연정 한 번 잘못 품었다가는 홧병으로 돌연사했을지도 모른다.
성은 내게 큰 주축을 차지하는 카테고리였다. ‘욕망이 지닌 에너지’가 항상 눈길을 끌었다. 나는 정력적인 사람이었고, 흥미롭게 본 작품의 중심에는 성이 있었다. 사회적 제약 속에 꽃피는 개인의 욕망을 다룬 영화가 많았고, 흔히 낭만적 사랑으로 발현됐다. 인물들은 그것을 성적 억압이나 능동성으로 드러냈고, 파멸로 치닫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서 느낀 무언가를 적고 싶었고, 나부터 재미난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성애에 관한 연재물을 쓰고 싶다’는 맘에 시작한 게 ‘에로십 프로젝트’였다. 성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여러 소설과 영화, 나의 경험을 가로지르고 묶어버리는 글쓰기가 시작됐다. 누구의 관심과 인정을 바라지 않은 글쓰기는 퇴근 후 따뜻한 라떼와 함께 치열하게, 때로는 두둑이 저녁을 먹은 채로 느슨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7개월에 접어들 때, 브런치에서 메일이 왔다. 출간제의였다.
‘내가 재미있어서 쓴 글을 남도 재미있게 읽어주다니.’ 하지만 운도 준비가 된 자만 잡는다고, 글의 짜임새가 헐거웠던 탓에 출판사와의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낙담했지만, 피드백도 받았다. 글을 꼼꼼하게 읽은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평가였다. 진정한 조언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엔 키워드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눈앞의 독자에게 말을 건다 생각하면서 비약이 지나친 불친절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지난 2월, 에로십 시리즈의 마지막 원고 ‘러브 유 이프 아이 데어’를 내보냈다. 이후 출판사 두 곳에 메일을 보냈고, 회신은 오지 않았다. 내 손으로 출판하기로 한 이유다. 긴 여정에서 고맙고 반가운 목소리도 꽤 만났다. 처음 연락을 줬던 M 출판사의 편집자 님, 출판에 관심 있는 건 어찌 알고 ‘출판사에서 내 책 출판하는 법’을 선물해준 회사의 브랜드 디렉터 님, ‘원숙하고 부드러운 어른의 글’이라고 댓글 가뭄인 브런치에 소감을 달아준 M님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 준비 중>이라는 한 줄 얘기를 길게 쓰는 건 ‘꾸준함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할 거지만(!) 가능성을 본다는 건 중요하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유일한 밑바탕은 꾸준함이다. 결과가 허투루 돌아가도 과정은 남아 거름이 되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한 시간>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다.
브런치 독자 184명. 작은 수이지만, 내가 목말라 쓴 글이 누군가의 갈증도 해소해줄 수 있다면 그만한 기쁨이 없다. 여전히 여성의 성적 경험이나 견해를 다룬 글은 귀하다. 그걸 색스럽게 쓴 글은 더욱이. 언제나 관능적인 텍스트들을 쫓아다닌 내 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다. 언젠가 “제 꿈은 에로 만화가예요”라고 떠든 적이 있는데, 반은 진담이다. 언젠가 맘껏 백수가 될 수 있다면, 글뿐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싶으니까!
에로십 시리즈 글 중에 ‘퇴계 이황이 이상형’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연애에 이상형이 필요하다면, 성공에는 롤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서 롤모델도 구했다. 신윤복이다. 신윤복의 호 혜원은 ‘여름에 작은 꽃이 피는 콩과 식물’이라 한다. 소박하다. 후대의 명성에 비해 정작 그 자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나도 그처럼 자신은 숨긴 채 글만 알리고 싶지만, 요새 그런 꿈을 품는 건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발언급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진정성에 기반한 파급력의 시대인 걸.
최근 어떤 모임에서는 나를 팔아서라도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딱 그 마음이다. 춘화하면 신윤복이 생각나듯 ‘색스러운 글’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책이 되고 싶다. 홍보라고는 자신이 없지만, 기록이라도 남기려고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리기로 하는 나와의 약속이다. 출판사 등록을 위한 행정적 절차와 책 제작, 텀블벅에 올릴 소개 페이지도 작업해야 한다. 탈고한다고, 편집한다고 새 글을 안 쓴지도 4개월이 넘어간다. 사실 제일 무서운 건 글쓰는 걸 까먹는 것이다.
이제 에로십 시리즈를 일단락 짓고, 다음 장으로 점프하고 싶다. 조만간 샘플북 후기로 찾아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