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롤스타즈 딱지

딱지 100개를 한번에

by 초코푸딩

큰애가 1학년때의 일이다.


2학기때부터는 아침엔 데려다주고 학교를 마치고는 혼자서 집까지 올 수 있게 되어 손목에 워치형 핸드폰을 채워주고 집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아이가 하교할 때쯤 되어 밖을 보니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굳이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갈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아이는 집에 오지 않고 있었다.


워치로 전화를 걸었다.

나: "원군이 어디야?"

아이: "응 엄마 나 거의 다 도착했어"

나: "응 알았어 빨리 와"


전화를 끊고 다시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아까보다 약간 굵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우산을 안 쓰면 옷이 젖을 정도가 될 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원군이 왜 아직도 안 와? 다 왔다면서?"

아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다리가 좀 아파가지고"(말 뒤끝을 흐린다)

나: "응? 다리가 아파? 왜? 다쳤어?"


하지만 말끝을 이상하게 흐리기도 하고,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이 도대체 모를 촉으로 추측건대 수화기 너머 아이의 목소리는 다리가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숨기는(켕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왠지 모르게 그냥 직감하게 한다.


아이: "아니~그게 아니고 다리가 그냥 아파가지고"

나: "지금 어딘데?"

아이: "집 앞에 의자 벤치 있는데 거기에서 있는데.."

나: "가만히 거기 있어. 엄마 지금 데리러 내려갈게."


우산두 개를 들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별걱정은 안 들었는데 왜 다리 아프다는 말을 하는지는 조금 궁금했다.


멀리서 가방을 메고 서있는 조그만 우리 아이가 보인다. 우산하나를 마저 펴서 줄 준비를 하면서 걸어갔다.


점점 아이와 가까워지고 아이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이 앞에 가서 우산을 주려고 봤더니 비를 맞고 있는 한쪽 손에 무언가 모를 투명한 비닐 뭉치를 쥐고 있는 작은 주먹이 보인다. 그 비닐뭉치에는 잘은 모르겠지만 장난감으로 추측되는 뭔가가 잔뜩 들어있었다.


아이: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나는 그 짧은 몇 초 동안 재빠르게 대충 상황을 파악 완료 후 너무 웃겨서 웃음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고 하기 직전에 입술을 앙다물어서 겨우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자연스러웠어..


'무언가 장난감을 샀는데 나한테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집에 못 들어오고 다리 아프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다가 드디어 엄마와의 만남'


아이의 한쪽손에는 실내화 주머니. 반대쪽 손에 들려있던 건 엄청나게 많은 브롤스타즈 딱지(키링 같은)가 담긴 지퍼백이었다.


나: "이걸 다 산 거야? 이걸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아이:"아니~그냥 구경하려고 갔는데 이게 있어가지고 이거를 그냥.."


일단 집에 가자고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아이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었고 나는 지금 뭔가를 말해버리면 그건 머리를 통하지 않은 마음의 소리 즉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내용만이 가득한 상처 주는 잔소리류의 그런 것 일 것 같아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집에 와서 물어보았다.


나: "이거를 많이 갖고 싶었었어?"

아이: "응.."

나:"이게 이렇게 통째로 파는 걸 산 거야?"

아이: "응..."

나: "근데 이게 얼마야?"

아이: "이게 이렇게 해서 만오천 원.."

나: "돈은 어디서.. 아, 혹시 주말에 할머니한테 용돈 받은 거 학교에 갖고 갔었어? 이거 사려고?"

아이: "어? 아.. 네.."(갑자기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무의식 중의 존댓말 시전)


아이고.. 아이한테 그동안 돈을 준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이 부분이 약간 불만인 것 같아 보여서 갖고만 있으라는 의미에서 줬던걸 학교에 갖고 갔었던 것이었다. 나랑 있을 땐 문구점도 잘 안 가는데 요새 하교할 때 문구점 가서 구경하고 집에 왔었다는 것도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100개 넘게 들어있는 것 같은 그 딱지 꾸러미를 보고 화가 올라왔는데 곧 웃음이 바로 나왔던 건 일단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는 나한테 혼날까 봐 집에 못 오고 손에 딱지뭉치를 들고 있던 그 모습에서였고 두 번째는 만오천 원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아이가 얼마나 딱지를 갖고 싶었으면 돈이 맞으니 냉큼 사 왔을까 싶어서였다.


난 물어보았다.

"2만 원 내고 그럼 5천 원은 거슬러 받았어?"


"응 아줌마가 이거 돈 돌려줬지"


아이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 다섯 장이 정확히 들어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돈 잘 맞춰서 거슬러 받았네. 근데 원군아 이거 많이 샀으니까 재밌게 갖고 놀고 다음엔 엄마랑 같이 가서 사자. 갖고 싶은 거면 사줄 거니까, 알았지?. 그나저나 딱지 어마어마하게 많네. 이거 백개 넘는 거 같아?"


아이는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히히 맞아. 백개 아마 넘을걸?"


나는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이 에피소드를 말했고 항상 무던한 남편은 역시나 아이에게 다그치지 않고

내가 아이에게 말한 것처럼 필요한 게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면 사주겠다는 말만 했다.


저녁 먹은 걸 정리하며 본 거실의 풍경은 아빠와 딱지를 바닥에 다 부어서 살펴보고 동생이랑도 같이 만져보면서 한참을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정확히 4년 후 이사 가던 날 이 딱지들은 아이의 의견하에 모두 버리게 되었다.


성인이 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유행하는 장난감은 한때이고 아이의 백개가 넘는 브롤스타즈 딱지는 역시나 1년이 채 안되어 먼지가 폴폴 쌓인 채 지퍼백에 담긴 그대로 방 한쪽 책상 구석에서 잠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가 갖고 싶었던 건 브롤스타즈 딱지였을까, 아니면 많은 딱지뭉치였던 걸까?

딱지를 뭉텅이로 구입하고 나서는 언제까지 행복한 기분이 유지되었을까?


성인이 된 나는 갖고 싶었던걸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짧아지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도 나와 같을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화내지 않고 넘어간 나 자신을 너무도 칭찬하고 싶고 이렇게 곱씹을 수 있는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준 아이에게 되려 너무 고맙다.


만오천 원으로 절대 구입할 수 없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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